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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9. 2024

쇼펜하우어와의 인터뷰 "인생은 견뎌야 멋이다"

*이번 편은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쇼펜하우어와 대담 형식으로 준비했습니다. 당연히 아래의 글은 쇼펜하우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는 저의 생각입니다.*



마지막날,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택 1층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의사로부터 폐렴이라는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직감했다. 마침내 그 때가 온 것이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고 즐겁게 아침 식사했다. 가정부는 늘 그랬듯이 집안을 환기하겠다며 창문을 열어놓고 밖으로 잠시 나갔다.  


"젊은 날의 희망도 산산히 깨어지고, 소년 시절의 꿈도 여름날의 오후처럼 찌들어버렸다. 잎의 죽음을 재촉하는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이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때 나는 낙엽처럼 저물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낙옆처럼 힘없이 추락할 때 바람에 말하고 싶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를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유언처럼 마지막 문구를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에게 마지막 손님이 찾아왔다. 불청객이었다. 

얼마의 시간을 건너 뛰어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외지인이며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 누구냐 너?

자까: 저는 평상시 선생님을 존경하던 후인입니다. 

쇼펜하우어: 흐음. 뭐하는 인간인데?

자까: 소설 쓰고 있습니다. 인기소설가가 목표구요. 

쇼펜하우어: 그게 목표라고 하는 것보니 책이 잘 안팔리나 보군. 그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있어. 내 일생의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몇 권 팔리지도 않았지. 그 책을 이해한 인간은 더 적을 것이고. 그러게 내가 이 책은 소장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쯧. 사람들 참 말 안들어. 헤겔은 뭐가 좋다고 그 난리를 치면서. 

자까: 그래도 제가 사는 시대에는 선생님 책이 연일 베스트셀러입니다. 

쇼펜하우어: (반색하며) 그래? 어떤 책이 인기인데?

자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하고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 중 하나는 모름지기 가방에 넣고 있어야 책 좀 읽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 어? 난 그런 책 쓴 적 없는데? 

자까: 아. 그게 선생님 말씀을 여기저기서 발췌해서 묶은 책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책들이 너무 어려워서 그냥 읽기는 철학을 전공한 저도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쇼펜하우어: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뭔가? 난 좀 인생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데.

자까: 항의할 것도 좀 있고. 물어볼 것도 있고. 죄송합니다.

쇼펜하우어: 항의할 것부터 해봐. 


자까: 선생님이 직접 제목을 쓴 건 아니지만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인데요. 내용에는 대충 동의하시는 거죠? 

쇼펜하우어: 내 잠언록을 온전하게 발췌한 것이라면 동의하지. 제목도 나쁘지 않고. 핵심을 잘 짚은 것 같기도 하고. 

자까: 선생님 생각에는 이런 말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화납니다. 인생의 기본세팅이 힘들다는 것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이라는 거 아닙니까? 

쇼펜하우어: 제대로 안 읽었네. 에휴. 이럴 줄 알았으면 해설서라도 충분히 써 놓고 죽어야 하는 건데. 누가 그래?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자까: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이 지혜의 시작이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쇼펜하우어: 그 뒤는 안 봤어?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인생에 대한 극복과 인생에 대한 굴복이다. 숨 쉬는 모든 존재에게 길은 이 두가지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굴복을 권고한 것 같아? 누가봐도 극복이 핵심이잖아!

자까: 그러면 "내가 강해질수록 나는 더욱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어떻게 해야 나를 이길 수 있는가? 항복이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항복하라면서요!

쇼펜하우어: 또 띄엄띄엄 편의적으로 해석하지. 그건 '항복'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거야. 행복을 포기하라는게 아닌 것이지. 모름지기 행복은 자기 개성에 맞은 일과 생활방식, 직업을 찾아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데 자꾸 다른 사람들의 눈높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니까 하는 말이지. 내가 뭐랬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랬지? 남이 원하는 거, 나한테 절대 안 맞는 거, 이런 거 하려고 애쓰지 말고, '나'답게 살라는 거야.


자까: 죄송합니다. 무식이 죄입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정말 묻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을 자살 예찬론자라고 부르는 것 아십니까? 

쇼펜하우어: 뭐라? 그건 진짜 화나는데. 내가 왜 자살을 예찬하겠어? 나는 천국 가서 권태 때문에 인간으로 돌아오느니 그냥 지금 사는 이 현실에서 고난 받기는 택하는 사람이야!

자까: 그래도,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부조리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악의적인 운명이니 웬만하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일단 태어났으므로 고통스럽게 살지 말고 가능한 빨리 죽는게 낫다." 

쇼펜하우어: 내가? 언제? 

자까: 이러시깁니까? 고딩들이 쇼펜하우어 하면 이 문구부터 떠올리는데요. 

쇼펜하우어: 흐음. 기억은 잘 안나지만 말투를 보니 내가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건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말이지 자살하라고 부추긴 것은 절대 아니야. 이참에 분명하게 자살에 대한 내 입장을 해 말해줄게. 적어. "자살은 생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따른 고통을 부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자살은 무지개의 물방울, 바다의 파도처럼 이 세상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자살은 멍청한 짓이다."

자까: 너무 시적인데요. 이러시면 또 오해가..

쇼펜하우어: 삶이 고통스러운건 피할 수 없는 팩트야. 맞아? 아니야?

자까: 맞습니다.

쇼펜하우어: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다 포기하라는게 아니야. 그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내하면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지. 생각해봐.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하면 거꾸로 죽으려 하겠어? 그런데 삶이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그냥 죽어야겠어? 죽으면 뭐가 되는데? 


소설적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세간의 헛소리와 달리 1860년 9월 어느 개인날, 가을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향년 72세. 


"인간은 만물 앞에서 자신을 강탈당하든지, 자기 앞에서 만물을 파괴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존재다. 신의 은총에 인생을 던지고 싶지 않다. 신은 이 세계의 수많은 출구 중 하나일 뿐이다."  


유독 쇼펜하우어의 글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대목이 많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또 쇼펜하우어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는지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언제나 개방형을 지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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