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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03. 2024

<파묘>의 철학: 사주팔자가 잘맞는 이유는?

음양오행설의 이해

*이 글에 나오는 음양오행과 사주팔자에 대한 해석은 고진석 선생님의 저서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를 읽고 풀이한 것입니다. 만약 오해석이 있다면 순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꾸벅. * 



영화 <파묘>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김고은의 신들린 굿판이 아니라 처음부터 관객을 압도한 휘파람이 아니었을까? 

병실에 들어온 여자 무당이 눈을 지긋이 감고 신경 거슬리는 단 곡조의 휘파람을 불어 대는데 마치 귀신을 부르려는 것 같습니다. 


울음을 멈추지 않고 사경을 헤매는 갓난아이의 부모들은 김고은의 휘파람에 압도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집에 비슷한 사람이 더 있겠네요. 아버지하고 할아버지."


이 한마디에 가족들은 무당을 완전히 신뢰합니다. 

소문이 맞았구나. 이 여자가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심리기법에 콜드리딩(cold reading)이라는 게 있습니다. 콜드리딩은 상대에 대한 정보 없이 속마음을 간파하는 기술로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가 FBI신참 요원 스털링에게 시전한 기술이기도 하죠.


"값 비싼 가방에 싸구려 신발, 내겐 촌뜨기처럼 보여. 때 빼고 광은 냈어도 품위가 없어보이지. 영양상태는 좋아보이지만 가난한 백인 집안 출신이고 웨스트 버지니아 억양이 자기도 모르게 묻어나. 부친께서는 석탄 캐는 광부셨나?"


으와, 역시 천재 한니발 렉터! (존경합니다) 

스털링 요원은 일면식도 없는 렉터 박사가 얼굴 한번 보고 그녀의 과거를 줄줄이 꿰고 있다는 것에 놀라며 그를 완전히 신뢰하게 됩니다. 비극의 시작이죠. 


하지만 콜드리딩은 예지능력이 아니라 숙련된 트릭입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 연출과 단정적인 말투, 여기에 냉철한 관찰력과 기억능력이 있다면 구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필자도 무척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 ㅠ)


콜드리딩이 통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인간은 생리학적으로 의심을 오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심은 뇌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심리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물며, "주위에 원한 가진 놈이 너무 많아!" "어린 것이 마음 고생이 심했구먼." 이 정도의 멘트는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주위의 분위기만 잘 연출된다면 말이죠. 심지어 원한 가진 놈에는 죽은 자도 포함됩니다. 또 마음 고생이 없으면 그게 인간입니까?


그렇다고 <파묘>에서 보여주는 음양오행설과 사주팔자가 완전히 근거 없는 미신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음양오행설이 미신이라면 과학은 성공한 주술일뿐이라고 합니다. 현대과학도 가장 근간이 되는 인과율 및 관찰과 실험의 객관성이 여전히 의심받고 있으니까요. 


<파묘> 끝부분 일본산 요괴 오니와 최종결전 장면을 보면 최민식이 이렇게 외치며 피에 젖은 막대로 오니의 발등을 마구 찍어댑니다. 


"불과 물은 상극이다. 쇠의 상극은 나무다. 그러니까 불타는 칼의 상극은.. 물에 젖은 나무다."


오행(五行)은 목, 화, 토, 금, 수 자연을 이루는 다섯가지 근본적인 성질을 상징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 (물, 불, 바람, 흙)과 비슷합니다. 


봄에는 초목이 잘 자라니 나무 木, 여름에는 뜨거워서 불 火, 곡식이 무르익고 변하지 않는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가을은 쇠 金, 겨울은 죽음과 생명을 주관하는 물 水, 마지막으로 인간이 서 있는 대지를 상징하는 흙이 土입니다.


또 봄에는 동풍이 분다 해서 동, 여름은 남풍의 남으로, 가을은 서풍 서, 겨울은 북풍 북이라 하여 오행은 각각 동서남북 4방위로 연결되죠. -土는 예외. 가운데 이기 때문에 방향이 없습니다. 

정리하면,

木-봄-동쪽

火-여름-남쪽

金-가을-서쪽

水-겨울-북쪽

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내려 땅을 파고들고, 흙은 물을 먹고, 물은 불을 끄며, 불은 쇠를 녹이고, 쇠는 나무를 벤다는 성질에서 착안해 오행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성립됩니다. 

<파묘> 속 최민식은 이 같은 상극 관계를 이용해 일본산 요괴를 물리치는 겁니다. 


五行의 순서는 인간이 밟고 서있는 대지(토)를 중심으로 놓아, 목-화-토-금-수 가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행이 계절과 방향뿐아니라 풍성한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 火는 마음과 심장을 상징해 사주에 火가 많으면 강하고 너무 많으면 몸에 무리가 가며, 적으면 잘 놀라고 수줍음을 타며 아예 없으면 냉혈한으로 불릴 수 있다. 이런 식입니다. -뱀파이어는 사주에 화火가 없다는..


그러면 생년월일시를 뜻하는 사주가 어떤 메카니즘으로 오행으로 연결되지 간단히 보겠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하늘을 양의 기운으로, 땅을 음의 기운으로 파악합니다. 

주역에서는 하늘을 양을 상징하는 건乾으로 칭하고, 땅을 음을 상징하는 곤坤으로 칭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대지를 밟고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조화로운 기운 속에서 생로병사를 겪게 됩니다. 


이때 하늘과 땅의 기운이 통하게 되는 4개의 기둥, 즉 四柱(사주)는 곧 그 사람의 태어난 년-월-일-시로 구성됩니다. 


머릿속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4개의 기둥을 떠올려 보세요. 그게 한 인간의 사주가 됩니다. 


어릴 적 필자에게 처음 사주팔자의 원리에 대해 알려준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님, 사주팔자는 과학적 근거가 없잖아욧!"

"이놈아. 언제까지 그놈의 과학 타령만 할 것이냐. 과학도 미망이고 미신이다. 복잡한 설명해봐야 네놈이 알아듣지 못할테니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인간이 아무 때나 태어날 수 있는 줄 아느냐?  하늘의 기운, 땅이 가진 기운, 그리고 네놈의 선천지기가 하나로 딱 맞아야 태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네가 태어난 사주를 알면 그때의 천지간 기운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 기운에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하늘은 천간이라는 열가지 기운으로 변하고, 땅은 십이지지라는 열두가지 성질을 갖습니다. 

이 10간과 12지지를 결합해서 60갑자를 만들고, 년-월-일-시 각각을 60개로 쪼갭니다. 

그러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주는 60*60*60*60=12,960,000 종류이고, 우리나라 인구로 봤을 때 확률적으로 같은 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약 4명 정도가 됩니다. -어딘가 나와 같은 사주를 가진 놈이 살고 있다!


게다가 천간과 십지지지는 각각 오행에 대입되는데 甲과 乙은 목, 丙과 丁은 화... 이런 순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60갑자를 모두 목-화-토-금-수 오행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렵나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생년월일시가 여덟 글자, 즉 八字로 치환됩니다. 


1953년 → 계사년 : 계(癸)-수(水) / 사(巳)-화(火)

     3월 → 병진월 : 병(丙)-화(火) / 진(辰)-토(土)

     3일 → 정유일 : 정(丁)-화(火) / 유(酉)-금(金)

   01시 → 경자시 : 경(庚)-금(金) / 자(子)-수(水) 


그러면 1953년 3월 3일 01시에 태어난 이 사람은 수, 화, 화, 토, 화, 금, 금, 수 라는 최종 판결을 받습니다. 이게 이 사람의 팔자인거죠.


자, 이제 용한 점집에 찾아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역술가는 의뢰인의 생년월일시를 받아적고 위의 공식에 따라 오행으로 구성된 8자를 기계적으로 추출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다음입니다. 8자는 공식만 알면 누구나 뽑을 수 있습니다. 오행 각각이 상징하는 의미도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덟 글자로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할까요?  


바로 역술가의 직관과 경험에 이 능력치가 좌우됩니다. 의뢰인을 관찰하고, 콜드리딩으로 신뢰를 얻어내고, 여덟 개의 오행이 상징하는 의미를 풍성한 스토리텔링으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있습니다. 역술인이 풀이한 사주가 어떻게 맞느냐? 애당초 오행이라는게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에 불과한데 말이죠.


점괘는 당신 무의식의 거울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존경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당신은 상당히 많은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으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다소의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는 반면, 그것들을 상쇄시킬 만한 장점도 있다."


1948년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는 학생들에게 성격검사 질문지를 나눠주고 모든 학생들에게 그 결과라며 똑같은 결과물을 나눠줬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모든 학생들이 '우와, 내 성격을 어떻게 이렇게 꼭 맞추지?' 하며 감탄했습니다. 


사주의 해석도 비슷합니다. 일단 신뢰를 얻은 역술인은 온갖 미사어구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그 결과를 의뢰인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둡니다. 그게 능력이죠. 


그렇다고 무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안 맞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기보다 자신을 더 잘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역술인은 그것을 도운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하게 말이죠.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일련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현실로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현실을 넘어서는 신비의 도구를 원한다고 합니다. 


삶이 나를 지치게 하고,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느껴질 때, 포기하고 싶지만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을 때, 그것이 과학이면 어떻고 신비의 도구이면 어떻습니까?   


저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런 구원과 같은 초월적인 힘이 말입니다. 


"A Lannister always pays his debts"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독에는 구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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