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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2. 2024

니체의 철학 "내게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니체의 '초인'에 대해 아십니까? 


'권력에의 의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권력욕구인가요? 


니체가 던진 이 핵심 키워드를 이해하려면 그가 살아온 거친 인생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집안에는 희귀한 유전병이 있었습니다. 두개골 내의 압력이 높아지면 극심한 두통과 안구통증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루터교 목사였던 니체의 아버지는 니체가 5살때 설교 도중 발작을 일으켜 결국 이 병으로 사망합니다. 아버지의 나이 고작 36세입니다. 어린 니체의 마음에 의심과 불안이 생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신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과 '나도 젊어 죽겠구나'는 불안

천재 소리를 들으며 10살의 나이에 명문 김나지움에 입학했지만 2년만에 유전병이 발현되며 병상 신세를 지게 됩니다. 고난의 시작입니다.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 병을 달고 살며 환자와 천재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게 됩니다.   


20살, 본 대학교에 입학한 니체는 신학 학부에 입학했지만 고전문헌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습니다. 사상적 배경이 겸양이 미덕이었던 기독교 이전으로 돌아간 겁니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니체는 대학 환영회를 해주겠다는 친구들의 꾐에 속아 사창가로 끌려갔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는 온통 매춘부들 밖에 없었던 거죠. 그때 니체는 유일하게 매춘부가 아니었던 '피아노'를 발견하고 이를 이정표 삼아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인생은 아이러니컬합니다. 위 사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약한 천재 찐따 니체가 술마시고 노래하는데 맛 들이더니 방탕한 생활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습니다. 실은 깨달음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보이는 것이 마음을 속인다는 깨달음을 얻었듯이 니체는 '나를 위한 쾌락'이 왜 죄가 되는지에 의문을 던지며 아방가르드한 퍼포먼스를 시전한 것입니다. 

  


니체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초인'은 대지이며 번개라고 말했습니다. 


'대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유토피아에 반대되는 비유로 지금 이 땅, 만물이 생성하는 지상을 의미합니다. 죽어서 천국갈 생각말고(그런 거 없으니), 지금 살아있는 동안 재밌게 온 힘을 다해 잘 살아라, 는 것이죠. 


'번개'는 그야말로 번쩍이는 의지로 고난을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힘입니다. 닥쳐온 현실을 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따라서 초인은 자신의 운명을 '신이 정했으니 뭘 해도 안되는 게 내 운명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운명을 규정하고 인식하며 업그레이드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에게 그들의 존재 의미를 가르쳐 주고 싶다. 그 의미는 초인이며 인간이라는 먹구름으로부터 번쩍이는 번개이다."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에의 의지'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권력'은 '힘'을 뜻합니다. 영어로 Power, 독일어로 Macht 입니다. 다시 말해 '힘에의 의지'가 좀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힘'은 초인의 원동력이 되는 힘이고, '힘에의 의지'란 어떤 고난에도 지치지 않고 초인의 생을 추진할 수 힘인 것입니다.    


죽은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진 니체는 병마에 지쳐 하루에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몇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죽을까, 고민도 했겠지만 1881년 어느날, '짜라투스투라'로 불리는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를 보고 영감을 얻어 고작 열흘 만에 최고의 저서를 완성했습니다. 


훗날 니체는 자신의 병이 아니었다면 이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 말했습니다. 고난과 운명을 정면돌파해 스스로 '힘의 의지'를 실천했고 '초인'의 반열에 올랐다 볼 수 있습니다.  


니체의 명언 '네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떠올려 보면 좀더 명확해집니다.


니체는 기독교적인 윤리에 가스라이팅 되서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거나, 가진 것에 만족하며 타인의 위압에 굴종하는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신은 죽었으니까 말이죠. 원래부터 없거나. 


그리하여 자신의 운명을 그냥 사랑하는게 아니고,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꿔서 사랑하라고 충고합니다. 


"나는 사랑한다. 상처받고도 영혼의 깊이를 깨달으며, 사소한 일에도 파멸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을.."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죄가 아닌 '힘'입니다. 신에서 벗어나 자립한 영혼을 믿지 않고 파멸을 두려워하는 인간을 니체는 혐오합니다.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유럽최고의 유명인사가 된 니체는 정작 병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됐는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니체의 유명세로 큰 돈을 번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신축한 [니체 문서보관소] 2층에 유폐된 채,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니체는 부르짖었습니다. 


"몇 번이고 좋다. 생이여 다시 한번."


이토록 고통스럽게 그대로 살아도 좋으니 부디 한번 더 살게 해달라. 그만큼 삶은 좋은 것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향년 55세, 굴복하지 않는 그의 정신은 아버지보다 20년 가까이를 더 살아냈습니다.


니체, 온 힘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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