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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30. 2024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다

어제 밤 카뮈를 읽다가 불현듯 떠오른 여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전위적이었고 처절하게 글을 썼다.

서울대를 나왔고, 유학파이며 인생과 영혼, 자유에 목말라했다.

오래된 흑백사진의 얼굴이 명확하게 기억나는데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 전..전혜진? 아니다.

 

"좁은 껍질 속에 감금돼 있는 정신의 중량.."


정확한 워딩은 아니라도, 기억나는 이 한구절은 [날개]의 첫마디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를 떠올리게 했었는데. 그녀가 누구였지?


그녀는 세기 말, 대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모두 그녀가 쓴 책을 끼고 다니면서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영혼을 찬미했다.

불꽃처럼 나타났다가 촛불처럼 스러진 여자.

20대에 1차 자살을 결행했고 30대 초반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는데...


끝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다가 그녀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전혜린.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수십 년만에 다시한번 행적을 살펴봤고, 그녀가 쓴 구절들을 가슴 속에 묻었다.


"나는 내 피부 속에서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좁은 껍질 속에 감금되어 있는 정신의 중량이 확 느껴지고 파괴 의욕을 느낄 때가 있다. 무언지 일격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을 기다리는 그런 때다. 이 반 의식 상태를 활짝 갠 의식 상태로 바꿔주고 이 반 소망된 생활을 열렬히 소망된 생으로 만들 무엇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나타날 것을 기다린다. 요술 지팡이를 기다리듯."


이거다. 그녀다. 그녀는 죽어 반백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치게 한다.


'1965년 1월 1일 오전 9시경 서울시 중구 남학동 자택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어? 수면제 과다복용 사망? 그럼 자살이 아닌가?


막연하게 전혜린이 자살했을 거라 믿고 살아왔는데,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희망이 솟는 기분이었다. 마치 겨드랑이에 날개가 솟아 나오려는 것처럼.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다.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죽기 며칠전 남겼다는 이 편지 구절은 '살고 싶다'는 의지 아닌가?

세코날 40알을 삼켰다는데 잠이 몹시 안오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나도 졸피뎀은 제법 삼켜봤으니까.


자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식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식으로는...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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