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살다가, 꿈을 꾸듯 죽는다.
클라이언트인 삼미기업은 내가 주도하는 홍보 기획서를 보자마자 한숨만 푹푹 내뱉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15분 만에 미팅은 종료되었다. 건물을 걸어 나오는 내내 마음이 참 시렸다. 그래서였을까,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삼미기업이 위치한 종로는 너무나 추워 북극 같다고 느껴졌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남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너 새끼는 뭐 제대로 하는 게 없느냐며 대뜸 쌍욕을 내뱉는 부장의 말에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 프로젝트는 후임인 임대리에게 넘길 테니, 퇴근할 생각 말고 들어와 인수인계 준비나 하라는 말에 또 한 번 죄송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후임인 임대리, 아니 그놈은 정말이지 얄미웠다. 능력은 보잘것없었다. 대신 사내 정치가 수준급이었다. 회사에서는 업무능력보단 정치를 더 인정해 주었고 어느 순간 그놈은 능력까지 좋다며 인정받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우직하게 일만 하면 알아줄 거로 생각했지만, 회의 때도, 클라이언트 미팅 때도, 업무평가 때도 언제나 그놈이 나보다 우수했다. 이유야 어떻든 나와 임대리의 가치는 수치화 되어 저장되었고, 내부에서는 나에 대해 `먹힌 기수`라는 말이 뒷돌았다. 그리자 그놈도 대놓고 나에게 말했다.
"선배, 잘 좀 합시다. 나까지 욕먹잖아."
뜨끈뜨끈한 정종 한 잔이 그리웠다. 시계를 보니 남부장은 이미 퇴근했을 법했다. 하지만 나찰 같은 그의 얼굴이 생각나자 그저 입맛을 다실수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지만 화려한 종로의 허름한 뒷골목들은 내 구역이나 다름없었다. 골목을 잘 타고 가면 빠르게 정류장까지 갈 수 있었다. 발가락이 얼어붙어 먹먹했지만, 버스만 타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뭉툭해진 감촉의 발을 하나하나 움직였다. 정류장이 보이는 마지막 골목, 누군가 뒤에서 나를 퍽, 치고 지나갔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무릎이 꺾이며 양 무릎을 바닥에 찧으며 쓸렸다. 겨울의 시멘트 바닥은 마치 사포 같았다. 바지는 갈아낸 것처럼 구멍이 나 버렸고, 그 사이로 발그스름한 속살이 비쳤다. 핏방울이 방울방울 차오르며 커지더니, 방울이 뭉쳐 줄기가 되어 흐르며 옷을 물들였다. 눈물이 살짝 흘렀으나 입만 쩍 벌렸을 뿐 아무런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고개만 까딱하더니 골목 밖으로 뛰어나갔고, 버스를 잡아탔다. 그렇게 그 무뢰배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자니 아픔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대신 왈칵하고 분노가 넘쳐났다.
`시팔...`
끊었던 담배가 간절했다. 분노를 연기로 바꿔 뱉어내지 않으면 내 속에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마침 바닥 위에 떨어진 장초가 보였다. 절뚝거리며 일어나 장초를 주워 들었다. 밟힌 곳이 있는지, 오물이 묻은 곳은 없는지 천천히 살피며 호호 불어 흙을 털어냈다. 그러고 있자니 옛날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처음 담배를 피웠던 고등학생 시절. 운 좋으면 사서 피울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엔 아버지 담배를 몰래 훔쳐 피웠다. 그마저도 안될 땐 밖으로 나가 바닥을 보았다. 참 더럽고 구질구질했던 시절이었다. 좋은 대학만 가면 다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유명 대학을 가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도, 취업을 준비하고 입사 후 지금까지도 나는 바닥에 떨어진 장초를 주워 들고 서 있었다. 난 계속 그대로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분노는 사그라들어 비참함이 되었다. 그놈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뛰어다니다 뇌까지 흘러들어 갔다. 눈앞이 서서히 뿌예졌다. 들고 있던 장초를 내팽개친 뒤 발로 짓이기며 괜한 화풀이만 이어갔다.
그때 어디선가 달근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정신이 확 깨어났다. 코를 킁킁거리며 근원지를 찾아 나서게 하는 그런 향이었다. 여기저기 헤맨 끝에 마침내 주황색 방수포로 만들어진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 어둑한 가운데 살짝 벌어진 입구에서는 주황색 불빛이 어둠을 찢어내고 있었다. 동시에 달달했던 그 향이 짙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입구에 다다르자, 중국어가 들렸다. 음질이 좋지 않은걸 보니 라이도 같았다. 방수포를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단출한 내부가 드러났다. 정사각형으로 짜인 공간의 정면에는 조리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양은 떡볶이 판에 발갛고 걸쭉한 태의 떡볶이가 굵은 방울을 내보이며 끓고 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김이 솔솔 올라오는 어묵 가판대가 있었다. 조리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원형 테이블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의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주인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는데, 영화 속에 나올법한 도인과 같은 복장을 하고 조리대 뒤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돋보기 안경을 슬쩍 내려 맨눈으로 나를 보더니 다시 안경을 올려 썼다. 그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힘든 하루였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슬쩍 내 무릎을 본 후, 휴지를 쓱쓱 뽑아 나에게 주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휴지를 받아 들고 황급히 피를 닦았다.
"별일 아닙니다. 그냥 넘어졌을 뿐이에요."
"세상에 별일 아닌 건 없지요."
할아버지는 종이컵을 꺼내 어묵 국물을 떠 주었다. 종이컵을 받아 들자, 손부터 시작된 온기가 금세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몸 좀 녹이다 가시죠."
나는 왠지 거절할 수 없어 순순히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어묵 국물을 몇 모금 마시자 종이컵은 텅 비어버렸다. 할아버지는 조리대 뒤편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무언가를 찾더니 이내 한 손에는 낡은 종이봉투를, 다른 한 손에는 앉아있던 의자를 들고 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곤 종이봉투를 열어 무언갈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작은 술잔 하나와 호리병 이었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처음엔 저도 뭔소린가 싶었는데, 오래 살다 보니 그 말이 다르게 와 닿습디다. 우리는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 열등감과 자기혐오밖에 할 수 없는 무간지옥에서 살고 있다, 라고요."
"어르신, 그건 좀 비약이 아닐까요?"
"'타인'이라는 말은 '나와 다른 누군가'라는 말이겠죠? '다르다'는 것은 결국 '나'와 다른 것이죠. 어떻게 나와 다르다는 걸 알죠? 이미 마음속에서 나와 다른 무언가를 찾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비교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만나가면서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게 좋은 영향이 될 수도 있지만, 선생님도 그러신가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알게 되자마자 나를 떠나간 첫사랑 미지가 생각났고, 그렇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대학 동기들이 보너스를 받았네, 승진했네 하며 모임을 주선했을 때, 만년 과장인 내 처지가 참 한심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후임인 그놈이 생각났다. 나보다 잘 나가는 후임 임대리, 임명선.
할아버지는 가만히 테이블 위의 호리병을 집어 들며 말했다.
"취생몽사(醉生夢死)라고 합니다. 한 모금만 마시면 그동안의 모든 번뇌와, 지난 고통스러운 날들의 기억을 모두 잊게 되는 전설 속의 술이죠."
취생몽사. 그거 쫄딱망했던 중국영화에서 나왔던 술 아닌가? 할아버지가 호리병의 뚜껑을 열자, 이곳까지 나를 인도했던 그 향이 순식간에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 술은 벚꽃 향이 가득했다. 벚꽃은 향기가 없다고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향이었다. 봄에 피는 꽃이지만 왠지 혹독한 겨울에 피어 오히려 당당하고 고귀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왠지 슬펐다. 그 화려한 향 밑에 살짝 슬픔의 향기가 숨어 있었다. 우울한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연민이 돋아나는, 그런 향이었다. 할아버지는 잔에 술을 반 정도 따랐다. 그리곤 잔을 살살 돌렸다. 그러자 벚꽃향이 점점 화려해지며 퍼져 나갔다. 오래 맡을수록 그 슬픔의 감정은 짙어졌지만 이내 설레임이 가득한 복숭아 향처럼 변해갔다.
"인생에서 참고 버티는 것, 그게 능사는 아니에요. 강하기만 한 것은 언젠간 부러질 수밖에 없죠. 부러진 건 어디에도 쓸 수가 없어요. 하지만 약하고 부드러운 건 그저 휘어질 뿐이에요. 휘어진 것은 펴면 그만이죠`
할아버지가 잔을 건네자, 나는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잔이 입가로 다가왔다. 그럴수록 코와 가까워진 잔에서 더 짙은 향기가 났다. 벌써 취한것처럼 세상이 행복하게 어질 거렸다. 입술이 무언가 촉각이 느껴졌다. 잔이 입술에 닿았다. 조금만 더 기울이면, 입을 조금만 더 열면, 이 향긋한 술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나는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액체가 건조한 내 입술에 살짝 닿았다.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이 입술에 닿은것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향긋한 내음은 여전히 코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끝내 입을 벌리지 않았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입술에 뭍은 술을 소매로 닦아냈다.
"어르신, 저는 애초에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자존심도 없고 고집도 없죠. 그래서인지 아직 부러지진 않았고 휘어있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 말씀대로라면 아직 펼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할아버지가 내가 내려놓은 잔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매혹적이던 향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그저 저급한 알코올 향만 풍겨냈다. 할아버지는 그 술을 바닥에 졸졸 흘려보냈다.
"결국 그 굴레로 돌아가시는군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유일한 선택일 수 밖에 없겠죠."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테이블에 술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자, 나는 그 소리를 시작으로 정신이 빠르게 흐려졌다. 몽롱함이 발끝부터 슬슬 타고 올라오며 하나씩 감각을 없애갔다. 이내 눈이 감기며 암흑이 찾아왔다. 귓가에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취생몽사, 술에 취해 살다가, 꿈을 꾸듯 죽는다는 의미를 항상 기억하시길."
눈이 번쩍 뜨이자, 나는 밖에 서 있었다. 바지의 무릎 부분은 구멍이 나 있었고, 흐르던 피는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짓이겨진 담배가 처량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온몸이 뻣뻣했다.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때마저 관절이 비명을 질러댔다. 감각이 불분명했다. 그럼에도 억지로 몸을 움직여 포장마차가 있던 곳을 찾아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살짝 젖어있는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졌다.
취생몽사, 나지막이 읊조리며 나는 정류장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