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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Aug 22. 2022

린넨 재킷


어제 플리마켓에 들려 만원이 채 안되는 중고 옷들을 구경하다가 행거에 걸려진 언뜻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린넨 재킷을 골랐다. 가격은 25만원… 만원 안팎의 옷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 온 이유는 섬세한 바느질과 좋은 원단때문이기도 했지만 역시나 값이 나가는 물건 이었기 때문이었다.

딱한번 입었던 올해 신상품이라고 해도 재킷 가격으로 내게 비싼 물건이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최근에 다시 긴축재정을 시작하였기에) 몸에 흐르는 린넨의 감촉이 가을날의 외출을 황홀하게 해줄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15년 전쯤, 내가 즐겨 입었던 실크 원피스가  떠올랐다. 단추 구멍이 다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매일 입고 또 입었던 그원피스는 입고 나서면 살에 닿는 감촉과 밤바람이 만나 금새 기분이 말랑거리면서 가슴이 간질간질 설레이고는 했었다. 뭔가 좋은일이 생길것만 같은 촉감이 었다.


힘이 있으면서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좋은 린넨소재는 내게 새로운 설레임을 안겨 줄거라고 직감했고 주저 없이 그 재킷을 샀다. 물론 약간의 에누리도 받았다.

재킷과 한벌인 바지도 있었지만 재킷은 오버사이즈로 입어도 좋을것 같았고 바지는 내게 너무 큰데다 나는 이 재킷을 다른 옷과 같이 입는 그림을 떠올렸기 때문에 바지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둘을 떨어트려 놓게 되었다.


밤에 자면서 충동적인 소비에 속이 쓰라렸던것도 사실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두고두고 입을 마음에 드는 외투가 생겨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나이가 들 수록 좋은 원단의 옷들이 주는 기분을 무시할 수 가 없다. 올 겨울에는 정말 좋은 품질의 캐시미어 가디건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름에는 쉽게 손이 가는 옷들을 싼것으로 다양하게 사고 입지만, 가을과 겨울은 몸을 감싸는 부드러움을 찾게 된다.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고 싶다.

악세서리를 살때도 오래도록 견고함이 유지 될 수 있는 것들로 고른다.

내 악세서리함에는 몇개의 단촐한 라인업 뿐이지만 하나하나 조금씩 들이는 새식구들은 은으로 만든 하트 팬던트 목걸이, 백금으로 만든 가느다란 줄의 목걸이, 담수진주로 만든 귀걸이 등이었다.

반지는 좋아하지 않아서 탐을 내지 않지만 예쁜 목걸이와 귀걸이는 옷에 맞추어 장만해두고 싶다.

하트팬던트 목걸이에는 이니셜 d 를 새겨 두었다. 언젠가 성인이 된 딸에게 물려 주고 싶어서 였다.

아직은 옷장에, 보석함에 간직할만한 것들 보다는 시즌을 함께 하고 안녕 할 물건들 뿐이지만 앞으로는  하나씩 장만해 가는 즐거움이 있을것 같다.

그런 의미로 새식구가 들어 왔으니 일요일에는 옷장 정리를 해야지. 누군가의 옷장에서 이사 온 린넨재킷에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 줘야지


여름옷과 가을옷이 어우러지는 초가을이 오고 있다. 민소매 옷에 린넨을 걸치면 기분이 좋아질것 같다. 어릴때 나는 옷을 너무 좋아해서 (관리는 매우 못했지만) 이주치의 용돈이 모이면 이대로 홍대로 동대문으로 옷을 사러 가곤 했다. 쇼윈도에 걸린 옷들을 보며 상상속에 빠지고 입어 보지도 않고 내 취향의 것들을 잘도 집어 냈었다. 옷을 입으면 모습이 바뀌는 그 재미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보드랍고 살랑거리는 옷이 바람결에  날리는 가을이 시작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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