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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Oct 10. 2022

넘쳐나게-

두 팔 가득 안아도 넘쳐나는 짐들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싣고 오갔던 파리 여행을 기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했는데 그때에는 작은 비닐봉지 하나 버리고 오는 게 싫었다. 나이가 드니 뭐든 넘쳐나는 게 싫다. 적절히 내가 원하는 만큼만 주어지는 게 익숙하고 편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많은 음식과 많은 짐, 많은 대화가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모든 차례차례 나와줘-라고 손짓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넘쳐나서 제일 곤란할 때는 역시 생각이 넘쳐날 때아닐지. 어제는 정말 오래간만에 생각이 없이 편안하고 깊은 잠을 오래오래 잤다. 일어나니 순둥순둥한 얼굴의 내가 릴랙스하게 움직이고 있더라.


잠과, 카페인, 숙면과 적절한 각성-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 제일 중요한 삶의 키워드이자 모든 것을 시작하는 전제 조건-


지금도 방금 아들에게 커피 한 잔 사 오라고 주문을 넣었다. 아직은 심부름 잘하는 착한 녀석…


쉴 새 없이 재잘대는 딸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며 글에 집중에 본다.


어제는 쉬는 날이라 양껏 자고 일어나 점심에는 쌀국수, 저녁에는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뭔가 탄수화물의 환장 파티였으나 피자가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다. 토요일에는 바쁜 가게 일을 하면서 햄버거 스테이크도 만들어 놨는데 아이들이랑 조카, 엄마 아빠에게 드릴 함박을 랩으로 하나하나 싸서 냉동실에 넣어 두니 흐뭇해졌다. 부드럽게 익힌 함박에 뜨거운 소스를 듬뿍 뿌려 그 위에 반숙 달걀 프라이를 올린 후 레드페퍼 알갱이를 톡톡 올리면 완성- 부드럽고 뜨거운 맛은 이 가을의 쌀쌀함에 제격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전기장판이 이르게 등판을 했다. 보일러를 틀자니 건조해지는 게 무서워 전기장판 일단 내보내 본다. 아이들 어릴 때는 전자파다 뭐다 해서 값비싼 온수 매트 등을 알아보고 그랬는데 살다 보면 기업들의 획기적인 상품 같은 것에는 눈 돌아가지 않는 때가 오고야 만다.


사실 갖가지 영양제의 역할까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타입이므로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과 햇빛을 직접 쬐는 것- 실제 운동으로 얻어지는 신체적 효과 정도만 추종하는 타입이다.


어떻게 보면 말 더럽게 안 듣는 고집쟁이인지도 모르겠다. 또 의외로 적절한 항생제 효과는 인정하는 편- 적기에 소량으로 처방받는 항생제를 무시했다간 깊은 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내가 또 누군가의 에세이도 흥미롭게 읽는 거겠지.


지난밤 꾸었던 꿈에 넘쳐나는 짐을 들고 안절부절못하던 내가 떠올라 썼던 넘쳐나는 생각들-


적어도 다음번 여행은 너무 넘치지 않게 얄밉도록 적절하게 잘 하고 오겠다고 마음에 표시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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