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드나잍호텔 Oct 11. 2022

너무나도 짧은


가을이 끝난 건가. 싶게 어제부터 매서운 바람과 쌀쌀한 날씨-


도무지 학습되지 않는 계절의 변화는 닥치고 나서야 “아 겨울은 이렇게도 냉정했지.”

아무것도 하기 싫어 이불 속에 몸을 웅크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부지런히 집안일을 마무리하던 오후 쉬는 시간도 없이 그저 누워 이불을 돌돌 말아 쥐고 있게 한다.

그래서 벌써 겨울잠을 자는 동물같이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졸음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틈만 나면 잠을 자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맞서려면 일단 몸은 적응해야 하니까 회복 시간을 넉넉히 두고 있는가 보다 하면서 착하게 몸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말을 잘 듣고 있는 중

그래도 저녁 일을 해야 하니 카페인이 몹시 필요해 아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켜 받은 커피 한 잔과 달달한 초콜릿 쿠키 두 조각을 앞에 두고 오늘의 할 일인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지난가을에 강릉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너무 아쉬웠을 거야. 아름다운 계절에는 되도록 어딘가라도 다녀오도록 하자. 단풍놀이가 한창인데 벌써 이렇게 행동이 굼뜨게 돼서야 어떡하나.

배가 부른데도 음식을 욱여넣으며 빠진 기운을 되살려 보고자 갖은 애를 쓴다.

젊을 때는 밤을 자주 새면서 몸을 혹사시켜 그 좋던 에너지를 갉아먹으며 살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또렷한 정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청춘은 완벽한 날씨의 봄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한강변을 자전거로 돌고 돌아오는 길에 셔터 내린 시장 안길로 들어오면 자전거가 저절로 나를 밀고 집까지 데려다주는데 고요한 시장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시장 사람들의 고된 하루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겨져 있어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토록 탈출하고 싶었던 순간, 순간들이 스치듯 생각나고는 한다.


인생을 어렵게 사느냐는 말을 듣고도 왜 어럽게 내 팔자 내가 꼬는지를 몰랐던 철부지 시절도 떠오른다. 늘 귀결은 우리 아이들을 보기 위해.로 끝나니까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자전거를 타며 떠오르는 마음은 페달의 속도에 맞춰 결국 바람결에 흩어져 버리고 소중한 것만 남는다.


여행을 위해 지출이 많아져서 이번 달부터 바로 통장은 청장이 되었다.

모래알 한 알 안 남기고 모두 사라질 예정- 내년 여행까지는 어쩌면 돌아와서도 당분간은 십 원 한 장 여유가 없을 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차분히 갚아나가자. 갚는다기 보담은 미리 준비하는 거니까 괜찮아. 하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본다. 그래도 막상 계좌에 돈이 없으니 마음이 헛헛하고 쓸 돈이 없다는 생각에 살짝 불안감도 밀려든다.


일을 할 수 있어서 돈도 생겼고 난생처음 내 앞으로 적금도, 예금도 착실하게 부어 가는 지난 한 해였다. 가게에 합류하고 이 년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모을 재간이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월급이 좀 올라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모으자마자 이렇게 목돈이 들어가는 여행을 계획하다니- 어쩔 수 없네.라며 헛웃음이 난다. 너무나도 짧은 가을날이 벌인 이런 일들을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었네.



작가의 이전글 넘쳐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