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배운 고요
전날 과음한 유난히 못생겨 보이는 아침 얼굴을 하고 머리가 무거워 겨우겨우 일을 했다.
오른쪽 눈에는 다래끼도 아주 작게 올라와 있다. 뭐 그래도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좀 이른 추위가 며칠 닥쳐 오더니 어제부터는 다시 따사로운 가을 날로 변신- 이렇게도 좋을 수가 있나 싶게 석촌호수의 산책로는 너무 아름다웠다.
마음속에 여행을 담아 그런가 여행 온 듯, 소풍 온 듯 기분 좋은 설렘이 마음속에 간질간질-
그래, 좋은 일은 항상 있어왔어. 슬픔만 간직해서 그런 거지- 내 인생의 장면 장면마다 햇빛이 가득한 순간들이 있었어. 왜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그리며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했을까-
호숫가를 빙 둘러 걸으며 오랜만에 개운함을 느꼈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시끌벅적한 장소에 가거나 음악이 크게 울리는 가게는 불편하다.
매일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일까. 쉬는 날에는 가급적 영화도 음악도 보거나 듣질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늘 내 귓속에 맴돌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당연히 텔레비전을 본 지는 너무 오래되었다. 제일 시끄러운 것은 사실 마음에서 들려오는 복잡한 소리인데 요 근래 들어서는 마음이 고요하다.
잔잔한 호수처럼 햇살이 반짝거리며 수면을 튕겨 낼뿐 어떤 물살도 없는 감정 상태이다.
이렇게 평온하다니. 놀랍기도 했다. 언제나 불안한 것이 나라는 사람의 원형인 것처럼 살아오다가 마흔이 넘어서 이제 차분해지고 있는 지금이 좋다고 느낀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수 있도록- 언제나 나를 들여다보기, 나를 고쳐 세우기- 흥분과 불안이 나를 덮어버리지 않도록 마음만은 늘 고요하기.
일종의 수련과도 같은 내 삶 속에서 작은 행복과 좋은 것들을 자꾸 발견해가면서 이 가을날을 잘 보내야지. 재미보다 편안함을 감사하는 그런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