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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Aug 22. 2022

도망칠 생각



가끔씩 나는 복권을 산다.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만큼 무기력한 사람들의 행렬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줄의 밝은 표정의 사람들은 없다. 낮의 햇빛에 눈이 찌푸려 졌다는 핑계를 대보지만 그 행렬에 선 나도 부드러운 표정일리는 없다. 복권을 사고 일요일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1등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상상해 보는것은 일상의 잔 재미가 된다.

누군가는 절실하게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복권 1등에 당첨된다는 가정하에 (애초에 2등이나, 3등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내가 세우는 가설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였다.

일상을 유지하면서 남몰래 부를 축적해가는 내모습을 그려보고는 한다.



우선 은행에서 가장 이율이 높은 입출금 통장에 돈을 분산해 넣어 놓고, 지금처럼 일하며 틈틈이 부동산의 매물들을 보러 다니는 모습을 떠올린다. 월세가 충분히 나오는 작은 상가부터, 호젓하게 내 삶을 꾸릴 수 있는 내 입맛대로 리모델링한 집까지- 다양한 경우들을 상상해보는것으로 기다림의 시간에 달콤한 공상 한조각을 집어 삼키며 방향제 타이머가 칙 하고 뿌리는 향기 처럼 이따금 치익- 뿌려지는 도파민, 혹은 아드레날린을 아주 미약하게 느낀다.

가슴이 살짝 설레이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단 두개의 게임, 고작 2천원으로 카페인 못지 않은 활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조차도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더이상 그 행렬에 서지 않게 되었다.

희망이라고 품기 에는 너무 확률이 저조 한데다 될거 라는 믿음이 들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더이상 호르몬의 분비가 일어나지 않아서 이기도 했다. 그렇다 그제 들린 편의점에서 당첨금 20억의 즉석복권을 하나 샀다. 조심스레 긁으면서 원하는 것을 떠올려 봤다.

지금 현재의 삶을 이어가면서 남몰래 자산을 불려 나가는 내 모습을 그렸던 그때와 달리,

나는 무조건 이곳을 떠나 일년간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여름의 고됨에 지치기도 했고,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일에대한 싫증과 괴로움이 찾아 오기도 했기 때문인것 같았다. 도망칠 생각뿐 일때 -

아 전에도 나는 도망칠 생각을 정말 많이 해왔었지.

생각이 가지를 친다. 과거 늘 도망쳐 온 기억들이 나를 덮는다.

그 기억들은 나를 패배자로 만들고, 인내심이 부족한 어린아이로 만드는 기억들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나는 얼마나 계획이 있는 삶을 사는가.

나이가 들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몇년전부터는 나도 인내하는 법이 먼 미래를 계획하고 목표를 갖는데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도망쳤던 삶들에게서 나에게 미래는 없었다.

나의 미래는 늘 다른 방향에 존재 했었고 미래와 부합하지 않는 상황은 지옥 같았다.


사실 뭐 대단한 미래를 그려 본 적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일을 하고 싶은때에 하면서 큰 부를 노리기 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그렸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늘 도망치기 쉽다.

그래, 지금도 나는 자유로움을 꿈꾼다. 희망한다. 어느것에도 구속 되지 않은 자유가 내 인생의 목표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묶여 있지 않은 자유를 갈망한다.


충분히 자신을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이 자유로운 것이라는것을 알지만 (심지어 어린시절에도 나의 의식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았다. )나의  내면에  학습 된 , 각인 된 죄책감 비슷한 책임감이 늘 나를 꽉 움켜 쥐고 있는 기분이다. 옴짝 달싹 못하게 나를 쥐고서 간간히 취하는 자유의 시간 에도 불쑥 나타나 정신차리라고 말해주는것만 같았다.


도망을 친다고 해도 내가 나를 못 벗어 난다는 생각을 하면 역설적으로 사실은 도망 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현재 이곳에 머무르고 특별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시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어느곳으로 어느 때로 도망친다고 해도 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은 환경이나 타인이 아닌 내면의 존재하는 나로 인해 모든것을 판단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우 물잔 하나로 온몸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 흐름속에서 그저 그 물잔을 내려 놓으면 될뿐이라는 해답이 있다는걸 아는게 지혜라고 하지 않던가.


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어떻게든 낼 수 있다.

조금의 배짱만 갖추고 필요한 경비를 마련할 준비성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합리적인 생각보다는 감정적인 판단이 앞설 수 도 있다고 때로  느슨하게 나의 울타리를 열어 놓는 여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커다란 울타리 안에 내가 정해 놓은 가치관이 살고 있지만 그 벽을 견고히 더 쌓아가서 점점 굳어져 가는 자아를 갖는것은 감정이 메말라져 가고 욕심과 분노만 가득한 노인으로 늙어 가는 것일뿐이다.

울타리를 풀었다 조였다 하면서 유연하게 사고 할 수 있어야 언제나 생기 가득한 눈빛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생각으로 갇혀 버리면 나는 결코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도망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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