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더욱 행복감을 느끼는것 같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예를들면 서비스로 나온 추가 안주와 같은 상황. 또는 길바닥에 떨어진 천원짜리를 보고라든가.
3월에 그에게서 다시온 카톡도 그런 느낌이었다. 3월 7일 새벽 3시에 온 밑도 끝도 없는 그의 카톡. "OO아, 다음에 너 시간 괜찮으면 한번 볼래?" 정확한 맞춤법에 예의있는 말투였지만, 메시지가 전송된 시간과 2개월만의 카톡에서 술냄새가 느껴졌다.
지난 1월 카톡을 마지막으로, 서로 "잘지내"라며 훈훈한 듯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카톡을 뒤로 그렇게 앞으로 각자의 길을 갈 줄 알았다. 평생.
하지만 2개월 만에 온 예상치 못한 카톡은 인연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다시 이어줬다. 솔직하게 말하면 묘한 희열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먼저 미련없이 헤어짐을 말하던 그에게서 온 선톡에, "오 역시 나 좀 괜찮은가?"란 생각도 들었고, 어딘가 성취감(?) 들기도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귀던 당시 트러블 하나 없이, 성격+다정함+능력적으로 모든게 멋졌던 사람이었는데 그랬기에 거부감 없이 덜했다.
7년 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그는 아주 목적 지향적이었다. “나중에 서울에 오면 연락줘"라는(서울을 떠난 그는 지방에서 일하고 있다) 나의 얼버무리려는 말에 덥석 “이번주 주말 시간돼?"라고 답하는 그였다. 그렇게 7년 만에 약속이 잡혀버렸다...
여기에서니까 말하지만 그 당시 몇명의 남자와 카톡을 주고 받고 있었다. 대학시절 썸남이었던 A와 몇번의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N년 전 소개팅남과도 연락하고 있었다. 대놓고 결혼을 하고싶다고 말하는, 아니 '피력하는' A와는 진지한 관계로 이어지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 누구와도 사귀지는 않았만.
어쩌면 여러(?) 선택지가 있었기에 소심덩어리에, 눈치왕인 내가 그를 만나러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소개팅만 잡혀도 약속 전날부터 걱정투성이인 '낯선사람 포비아'의 성격이다. 하지만 당시 몇몇 이성과 연락을 주고 받던 상황은 괜스레 나를 북돋아주었다. "이 남자가 아니어도 나는 잘살 수 있을걸" "밥이나 사주고, 근황 얘기나해야지"와 같은 말을 머리속에서 되뇌였다.
그렇게 자신감 뿜뿜 부리며 나갔지만 막상 식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자 적잖이 떨리는 나였다. '무슨 얘기를 해야하지''어떻게 인사해야하지' 등 오만가지 생각이, 그에게 다가가는 5초간 머리속을 떠다녔다.
"오랜만이야"
사회생활 베테랑이 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척 가면을 쓰고 있었다. 서로 약간은 어색해하면서, 이 상황을 신기해하면서, 우선은 주어진 일을 처리기로했다. 서로 대충 잘 먹을 것 같은 적당한 안주를 고르고, 조금 더 고심해 술에 대해 협의했다.
술이 술술 넘어가는만큼 이야이도 술술 진행됐던 것 같다.(기억이 미화된 것일수도 있지만) 그러게 1차를 끝내고 당연하다는듯이 우리는 2차 3차까지 가서 술을 마셨다. 그 긴시간동안 거의 낯선사람에 가까운 이 남자와 뭐 그렇게 할말이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일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우리회사 얘기도 하고, 그동안의 연애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정말 자연스럽게이야기는 흘러갔는데, 그의 한마디에 일시정지 될 수 밖에 없었다.
밤과 아침의 중간쯤인 새벽 어딘가쯤 그가 말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는 결혼생각이 없어. 그래서 다 헤어졌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