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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25. 2023

 시어머니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2

[나의 사람들] 시어머니

시간이 지나고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서로 이해하는 것이 생깁니다



남편은 가능한 친정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조금 불편한 내색이 있었지만 그래도 남편은 최선을 다해 내 기분과 아를 살폈다. 시댁에는 단체 채팅방을 통해 종종 아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드렸다. 첫 손주인지라 모두의 관심이 뜨거웠다. 특히 아버님은 첫 손주가 아들이라고 더 좋아하셨는데 그 좋은 마음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하셨다.

가끔씩 소란했지만 보통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아빠가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시는데 아기가 응가를 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저귀를 갈아주며 기특하다고 칭찬이 일색이었고, 아빠는 "하하 냄새 구수하다! 하하 밥맛 좋다!" 하며 손주 사랑을 재치 있게 표현하셨다. 그럼에도 난 어쩐지 아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그때 시댁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세상 할아버지 할머니 아무리 손주 이쁘다고 해도, 나는 똥기저귀 못 치운다"

시어머니가 올린 글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음?? 갑자기?? 왜 이런 말씀을?'

앞에 놓친 대화가 있나 싶어 스크롤을 올려봐도 뜬금없는 말씀이었다.

남편이 나랑 상의도 없이 아기 양육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때까지 아이 양육을 어떻게 하자거나, 양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거나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없으며 의논을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순간 내 눈앞의 상황을 빠르게 스캔했다. '똥기저귀를 치우고 있는 엄마와 그 앞에서 똥냄새를 맡으며 저녁을 드시는 아빠.' 너무 기가 막혀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이놈의 눈물은 또 가득 차올랐다. 엄마 아빠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아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숨죽여 울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가 또 울고 있는 나를 발견 하긴 했지만,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셨다. 분명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지랄 맞던 성격 여전하네' 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고 속상해하셨을 것이다.


남편이 돌아오고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하다 또 울었다. 이런 상황에 어머님이 그런 메시지를 갑자기 왜 보내셨는지 이해할 수 없고 너무 속상하다고 이야기했다. 무모하리 만큼 예민하게 굴고 별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보이더라도 그걸 받아줘야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남편일 것이다. 평소 불같은 성격의 남편은 나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답답함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잠시 후 단체 채팅방이 난리가 났다. 남편은 "말 가려서 하세요"라고 한마디 남겼고 그 주 주말에 시댁으로 바로 올라가서 어머님 아버님에게 다시 한번 말 가려서 하시라고 직언을 날리고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님은 스스로도 말실수를 했다 생각하셨는지 별말 없으셨고, 아버님은 자식 키워놨더니 부모한테 큰소리친다며 남편에게 호통을 치시고, 남편은 그런 아버님과 크게 싸우고 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은 곧 죽어도 아니란다.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생활 약 7년 동안 때만큼 남편이 듬직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시부모를 상대로 시원하게 한마디 해줘서가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울감에 힘들어하는 와이프를 옆에서 유별나다 생각하지 않고 온몸으로 감싸 안아준 느낌이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때까지의 모든 우울감이 한방에 날아간 기분이기도 했다. 이런 남편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첫 번째 결혼기념일,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첫 외출을 했다. 남편하고 소소한 데이트를 하며 오랜만에 참 행복하다 생각했었다. 겨우 두어 시간을 보내며 한 끼 먹었을 뿐이지만 빨리 우리 아기에게로 돌아가자며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면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기에게로 향하는 우리 아빠이고 엄마라는 사실이 그제야 감격스러웠다.


지난 일을 추억하듯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면 남편은 어리둥절해한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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