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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 승리도 패배도 중요하지 않아

열등감으로 갇힌 어른, 자유로이 달리는 아이들

by Nova G

어릴 적부터 시시하고 재미없다고 여긴 동화가 있다. 바로 <토끼와 거북>이다.
토끼와 거북의 달리기 경주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설정인가! 이야기는 결국 거북이가 이기고, 토끼는 억울해하면서도 패배를 인정하며 끝난다. 아이들은 그 엄청난 결과에 환호성을 지르지만, 나는 속으로 비웃는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어른은 나뿐일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는지는 뻔하다. 토끼처럼 자만하지 말 것, 거북이처럼 꾸준히 최선을 다할 것.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러한가? 거북이가 감히 토끼와 달리기 경주를 한다면 비웃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불가능한 경주에 목숨 걸듯 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늘 편견 없이 살아야 한다고,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노력하는 한 실패는 없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이 동화 앞에서는 어쩐지 냉소가 앞선다.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도 많으니 무모하게 덤비지 말라. 냉철한 판단 하에 물러설 줄 아는 것도 현명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 말을 삼켰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동화를 못마땅해하면서, '그래 아직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걸 배우는 게 더 중요한 나이다' 라며.


그러던 어느 날, 이영자 님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군부대에서 ‘토끼와 거북이’를 주제로 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거북이는 왜 그 경주에 응했을까? 누가 봐도 상대가 안 되는 경기인데.”

그녀는 이어 자신이 겪은 열등감과 콤플렉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열등감을 깨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가족까지 무너진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거북이는 열등감이 없었던 거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도록 식상하게만 여겼던 동화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거북이가 토끼를 상대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능력 때문도, 토끼의 자만심을 간파해서도 아니었다. 열등감이 없었기 때문이라니.


그날 이후 아이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졌다.


“네가 거북이라면, 토끼와 달리기 시합할 거야?”

일곱 살 딸아이는 단숨에 대답했다.
“응! 할 거야!”
"왜? 토끼는 너무 빨라서 솔직히 거북이가 이기기 힘들잖아."

"아냐 걔(토끼) 게을러서 어차피 져. 내가 다 알아."

"네가 어떻게 알아? 토끼와 거북 이야기 몰랐으면 토끼가 낮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모르잖아."

"아냐 내가 다 알아. 그러니까 세수도 안 하고 물만 먹고 가잖아."

기껏 진지하게 물었건만, 아이는 <깊은 산속 옹달샘>의 게으른 토끼와 동화 속 토끼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 천진한 논리에 나는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아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같았지만 이유가 달랐다.
“져도 상관없어. 달리기는 그냥 재밌잖아. 친구들이 응원해 주면 더 재밌어!”


때론 어른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동화를 읽어주지만, 그 의도가 아이들에게 닿지 못한다. 내 질문도 그랬다. 아이들은 여전히 동화 속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살고 있었다. 세상엔 불가능한 일이 많다거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 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지면 어때서, 그냥 달리기가 재밌으니까.”
그 속에는 열등감도, 계산도 없었다. 진정한 동심의 증거였다. ‘시시한 동화’라며 비웃었던 나는 결국 내 안의 열등감을 마주하지 못한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끝내 동화 속에서 자유로웠지만, 어른은 현실이라는 핑계로 스스로를 가뒀던 것이다.


동화가 아이들에게 주는 힘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세상에 불가능이 많다는 사실은 언젠가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저 달려볼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야말로 동심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이다.

늘 아이들에게 동화 너머의 현실을 알려주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지만, 오늘은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동화의 진짜 힘은 어른의 잔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무구한 해석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거북이가 가르쳐 준 것은 승리의 법칙이 아니라 ‘나의 속도로 달릴 용기’였다. 아이들이 보여 준 것은 패배조차 놀이가 될 수 있는 자유였다. 이제 나는 안다. 우리가 끝내 도달해야 할 지점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그저 달릴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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