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이가 진짜 어른이 되게 하는 가장 오래된 마법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아이에게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장난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세 살배기 아들에게 장난을 쳤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밥도 잘 먹었어?”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들에게 나는 일부러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어어, 이상하다? 우리 아들 코가 조금 길어진 것 같은데?”
아들은 두 손으로 코를 감싸 쥐며 씩 웃었다. 그 순간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속인 것이 미안했지만, 나는 그 장난을 딸아이에게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아이들에게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말썽꾸러기 나무 인형’으로만 각인돼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피노키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품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나도 피노키오 만화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었다.
‘왜 저렇게 말을 안 들을까, 왜 제페토 할아버지를 자꾸 힘들게 할까. 제페토 할아버지는 왜 저런 나무인형을 만들어서 고생을 사서 하시는 걸까”
어린 마음에도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특히 고래 뱃속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은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피노키오 때문에 할아버지가 죽을 뻔했구나. 피노키오는 불효자식이다.’ 어린 나는 다짐했다. ‘나는 피노키오 같은 아이가 되지 말아야지.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실제로 나는 그런 아이였다. 공부 잘하고 학교에서도 늘 칭찬받고 동생들을 잘 돌보고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는.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오히려 어른이 된 후 부모님의 마음에 더 많은 상처를 남겼던 것 같다. 어린 시절보다 어른이 된 지금이 더 불효자식 같아 가슴이 아려온다.
최근 들어 어린이 유괴 사건이 부쩍 늘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불안이 커진다. 수법도 점점 교묘해져 아이들에게 어떻게 주의를 줘야 할지 막막하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자신만만하게 “나는 절대 따라가지 않을 거야. 바로 도망쳐서 어른들에게 알릴 거야”라고 말하지만, 일곱 살 딸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두렵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설명하며 불안과 공포를 먼저 심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때로는 말을 삼키고 그저 기도할 뿐이다.
어느 날 저녁, 딸아이에게 피노키오를 읽어주는데 그날따라 이야기가 달리 들렸다. 최근 본 유괴 사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채 책을 읽다 보니, 동화 속 장면이 하나같이 공포스러웠다. 여우에게 속아 서커스단에 들어가고, 장난감 나라에 홀려 따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현실과 겹쳐졌다. 나는 책을 읽다 말고 아이에게 물었다.
“만약 친구들이 우르르 모르는 아저씨를 따라가면서 ‘장난감 사 준대! 같이 가자’하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갈 거야?”
딸아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들이 끼어들었다.
“가야지!”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왜? 모르는 아저씨잖아.”
“근데 친구들이 다 같이 가면 안 위험하잖아.”
다 컸다 여겼던 아들은 여전히 허술했다. 어린이 유괴가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 내 아이도 예외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걱정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히 설명했다. 친구 여럿이라도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말 것,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즉시 알릴 것, 그리고 외모를 가능한 한 자세히 기억해 둘 것. 아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알았다”라고 했지만, 그 한마디로 내 걱정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피노키오의 세상은 현실과 너무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피노키오의 행동도 단순히 ‘말 안 듣는 아이’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순수함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몰려가니 당연히 함께 간 것뿐, 세상을 의심 없이 바라본 결과였을 뿐이다. 위험은 어른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그 호기심과 순수함을 무작정 억압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는 없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피노키오를 탓할 일만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결국 고래 뱃속에서의 재회로 향한다. 어릴 적엔 제페토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장면이 보인다. 마치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위험에 떠밀려 올 아이를 기다리듯 그 깊고 어두운 곳에 먼저 와 있는 것 같았다. 고래 뱃속에서 불을 피워 탈출한 제페토 할아버지와 피노키오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피노키오는 지난 일을 깊이 반성하고 진짜 사람이 되어 기뻐한다. 책장을 덮고 아이들에게 '그러니까 너네도 엄마말씀 잘 들어'라고 잔소리로 마무리하려는 찰나 큰아이가 물었다.
“근데 피노키오도 나무잖아. 고래 뱃속에서 불이 붙어서 타버렸어야 하는 거 아니야?”
초등학생 다운 질문이었다. 큰 아이의 질문은 종종 나를 당황하게 하지만 나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피노키오가 불에 타도록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었을까? 피노키오에게 불이 붙지 않게 온몸으로 끌어안아 지켰을 거야. 엄마였어도 당연히 그랬을 거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한 대답이지만 내 말에는 피노키오 이야기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단순히 ‘말썽꾸러기가 여러 어려움을 겪고 반성 끝에 착한 아이로 변한다’는 교훈담이 아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그럼에도 끊임없이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 제페토 할아버지의 사랑이야말로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피노키오를 살린 것도, 그를 진짜 사람으로 만든 것도 결국 사랑이었다.
험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은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란다. 그 과정에서 분별력을 얻고 자신만의 신념을 세우며 어른이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모험 중인 피노키오인지도 모른다. 불완전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을 살아내는 존재들 말이다.
오늘은 그 한심하게만 보였던 피노키오에게서 배운다. 피노키오가 끝내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불완전했지만 끝까지 모험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명랑하게 마음먹는 것, 그것이야말로 험난한 세상을 견뎌내는 피노키오만이 가진 힘이었다. 어른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그 여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믿어주는 일일 것이다.
진짜 사람이 된 피노키오를, 그리고 여전히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을, 나는 오늘도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