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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공주>, 예쁘지만 불완전한 존재

수동적인 캐릭터의 대명사, 엄지공주의 해피엔딩과 비극의 안나 카레니나

by Nova G

한동안 딸아이는 <엄지공주>에 빠져 있었다. 며칠이고,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공주 시리즈’ 가운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엄지공주였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권해도 소용없었다. 아이는 다시 엄지공주를 꺼내 들었다. 몇 번은 애써 다른 책을 집어 들게 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의 눈빛은 너무도 간절했다. 엄지공주의 인기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자기 아이도 이상하게 엄지공주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반응이다.


그 무렵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었다. 소설 속 안나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결코 건강한 어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의 사랑은 자라지 않는다.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라듯, 사랑도 함께 자라야 한다. 그러나 안나의 사랑은 끝내 어린아이의 떼쓰는 자리에서 머물러 사랑하는 이들을 지치게 한다.

사랑은 단순히 주고받는 행위만으로는 깊어지지 않는다. 오래 참고, 인내하고, 결국은 나의 일부를 내어주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성숙한다. 그러나 안나는 끝내 그 길을 가지 못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상황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며, 스스로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읽는 동안 나는 자주 엄지공주를 떠올렸다. 그렇게 예쁘게만 태어나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늘 떠밀려온 상황에 가만히 앉아 울고만 있는, 그런 모습이 엄지공주와 많이 닮았다 생각했다. 엄지공주 같은 안나는 계속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결국 스스로 비극을 택한다.

반면 엄지공주는 두더지에게 시집가기 전, 생쥐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햇빛을 보고 오고 싶다"고 간청하고 드디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그 작은 용기, 그러나 유일한 자기 목소리. 그것이 엄지공주를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 두 주인공을 비교하며 책을 읽다 보니, 엄지공주가 조금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엄지공주에 빠져 있는 딸아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묵묵히 지켜만 봤는데, 하루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도 원하는 게 있으면 꼭 엄지공주처럼 말해야 해. 싫은 건 싫다고 말해야 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해. 엄지공주가 생쥐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고 오겠다고 말한 것처럼, 그 용기 있는 한마디가 너를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갈 거야."


해주고 싶은 말은 더 많았다. 그 한 번의 용기로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동화 속에서는 엄지공주가 왕자를 만나 행복한 엔딩을 맞이하지만 소설 속의 안나는 비극을 맞이한다. 현실은 소설에 가깝다. 하지만 아직 그걸 일곱 살 아이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그저, 엄마는 엄지공주가 싫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엄마가 싫다고 하니 속이 상하는 모양이다.


나 역시 나의 소중한 딸아이가 엄지공주처럼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평온한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바람을 품는 동시에 나는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세상은 언제나 '순응하는 선함'만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엄마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이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내가 읽고 있던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는 한 여자가 고상하고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예쁜 거 좋아하는 딸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나는 "어른들의 <엄지공주> 이야기야"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언젠가 이 아이가 자라 스스로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날을 상상해 본다. 그때쯤이면 내가 지금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책이 주는 깨달음은 엄마의 걱정 섞인 말보다 훨씬 깊고 오래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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