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음악대가 내게 알려준 두 번째 인생의 법칙
브레멘 음악대.
이 동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힘을 모아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용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유쾌하게 그려낸다.
꼭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쓸모를 소소하게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 만으로, 인생은 충분히 기쁘고 의미 있다.
동화가 끝나고 아이는 물었다.
"엄마는 이 동물들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
"엄마는 당나귀가 제일 좋아. 왜냐하면 당나귀가 제일 먼저 ‘브레멘으로 가자’고 말해줬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모일 수 있었잖아. 그래서 좋아.”
늙고 힘이 약해져 버림받은 당나귀,
늙어서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는 개,
늙어서 더 이상 쥐를 잡지 못하게 되자 쫓겨난 고양이,
늙어서 시끄럽게 울기만 한다는 이유로 주인의 먹이가 될 뻔한 수탉.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버림'받았지만 누구도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 마리의 동물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 브레멘으로 떠났다. 그 길이 순탄할 리만은 없다. 비록 모두 늙고 버림받은 처지이지만 각자의 쓸모를 발휘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그들의 사연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괜히 서러워진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가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물었다.
“엄마, 늙은 건 쓸모없는 거야?”
그 한마디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떻게 이야기해 주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셨다. 20년 넘게 일하시다 퇴직 후 요양사 자격증을 따셨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요양사로 일하고 계신다.
아빠는 코로나가 오기 직전에 퇴직하시고 지금은 개인택시를 하고 계신다. 한평생을 운전으로 우리 삼 남매를 키우셨는데, 다시 또 운전대를 잡으셨다.
부모님이 일흔의 노모가 되어서도 새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솔직히 자식으로서 많이 슬픈 일이었다.
'왜 우리 엄마 아빠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지 못하고 또 다른 일을 하셔야만 했을까.'
그게 다 못난 자식 때문인 것 같아서 죄스러웠다. 그래서 퇴직하시는 순간에도 새로운 출발에도 마음껏 축하도 응원도 해드리지 못했다.
이제, 동화책을 보며 아이가 던진 질문에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뤄낼 수 있는 건, 어쩌면 엄마 아빠한테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훗날, 내 일로 나의 노년을 즐겁게 채우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작년 여름, 엄마의 생신에 찾아갔을 때 엄마는 오히려 우리에게 진주 목걸이를 선물하셨다. 요양사로 첫 월급을 받은 기념이라며 내민 그 목걸이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눈부셨다. 이 나이에도 스스로 벌어 딸들에게 선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그때 엄마의 표정은 진주보다도 고왔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진짜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
잠시 잊었던 그 기억을 아이와 함께 본 <브레멘 음악대>를 통해 다시 떠올렸다.
나는 이 이야기가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느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버려지거나 밀려나며, 그때야 비로소 진짜 자기 길을 걷기 시작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관계에서 멀어지고, 익숙한 자리에서 떠나야 할 때, 우리는 모두 브레멘으로 향하는 여행자가 된다.
여러 매체에서 이미 한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이 과감하게 다른 분야의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곤 한다. 한평생 가정과 자식들만 돌보며 살다가 노년에 꿈을 이루고자 도전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아왔다. 그때마다 참 멋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멋있다고 여겼던 이들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 그에 비하면 엄마 아빠의 새로운 직업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꼭 화려하거나 멋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원하던 목표를 완벽하게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브레멘 음악대의 동물들도 결국 브레멘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전하는 과정과 함께하는 경험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 든 사람도,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청년도 각자의 이유로 길을 찾는다. 어쩌면 그 여정 자체가 브레멘으로 향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도착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브레멘 음악대의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네 마리의 동물들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신이 팔려가거나 인간의 먹이가 되도록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늙었기 때문에 박탈당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함께 일하고, 함께 쉬며, 함께 여행을 다닌다. 단골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쥐여주며 행복해하신다. 그럼에도 늘 “더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하다”라고 하시지만,
그 속에서 “이만큼이라도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나의 자부심이 된다. 그 마음을 닮고 싶다. 엄마 아빠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늙는 건 쓸모가 없어지는 거야?"라는 딸아이의 질문에는, 나의 삶 전체로 답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