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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Jul 25. 2020

하늘색, 하늘의 색

우울에 빠져죽기 딱 좋은 날 시간 계절이 있다



나에겐 여름이 그런가.

개인적으로 나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 생각해 아쉽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그 사실을 망각하려 작년 여름엔 여행을 떠나거나 아주 바쁘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여행도 바쁘게 살지도 못하는 시국인지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기도 하고 생활패턴을 맞춰보기도 했지만

무더위에 자꾸만 멍해진다. 우울이 아닌 더위에 취해있는 걸지 몰라도 더위가 없던 우울까지 부으고 더하고 곱하는 듯 하다. 매년 다들 새해 목표로 쓰곤 한다는 영어공부도 이래서 못 하는 거다. 이유가 충분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착취하고 있다는 말은 (<대화의 희열> 아이유 편을 보다가 들었다)

반대로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착취한다는 말로도 쓰일 수 있을까.


과거의 써놨던 어떠한 맘에 들던 문장이 떠올라 적어냈던 곳을 찾으려 메모장을 뒤지다 

작년 일본어 공부를 위해 써 둔 메모를 발견했다


열심히도 했다 너 정말.

노트북이 수리 중이라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의 역량의 공부를 못하고있는 것 뿐이야 라고 주장하는 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듯. 안 외워지는 문법이나 단어를 어떻게든 외우려 가장 많이 만지는 폰에 빼곡히도 적어놨다.

빨간 색으로 뜻이 적힌 단어장을 빨간 투명필름으로 가려 외우듯, 뜻 부분만 보일듯말듯한 아주 연한 회색으로 메모해두며 외웠더랬다.

쓰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는데, 미친듯이 안 외워졌던 각종 접속사들은 (지금 수준에서 보니 그럴만하다. 실생활에서 거의 안 쓰거나 뜻에 오류가 있는 접속사 투성인걸)

메모장을 캡쳐해 카카오톡 배경화면으로까지 오랜시간 해두었다. 어휴 독해.



아무튼,


원래 찾으려던 문장으로 돌아오자면


-새벽을 머금고 있는 시간- 같은 문장이었는데


아마 저 때는 하늘색이 스며오는 그 정도의 하늘의 색을 애정했을 것이다.

새벽내내 폰을 만지다가 눈이 시려와 잠깐 방의 넓은 창문쪽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서서히 하늘빛이 창틀로, 창틀을 넘어 흰색 벽으로 스며들어오는 게 보이곤 했다.

쨍해 눈을 찌르지도 않는 연했던 겨울 하늘의 빛.

그걸 보며 문득 떠오른 문장이라 메모해 둔 기억이 있다.


요즘은 지금 이 시간 정도가 좋다. 짙게 아주 짙게 어둠이 깔려 방의 전체 형광등을 켜 두기에는 눈이 부셔 노란색 스탠드만 켜두기 좋은 이 정도의 하늘의 색.


인터넷을 돌다가 '코랄색Coral의 뜻은 ㅇㅇ에 밀가루를 뿌린 정도의 색'이라는 낭만적인 지식인표 글을 봤는데 (뭐였을까. 당근, 금붕어, 노을, 쨍한 주황을 또 누가 품고 있더라)

그렇담 저 전구빛은 모래에 밀가루를 뿌리면 나오지 않을까.


밀가루 빛 모래. 혹은 모래빛 밀가루.



우울엔 이정도 분위기와 하늘의 색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날이 밝아와 빛이 슬며시 끼어들면 무드없잖아요. 새벽감성 깨지 마시라구요.


우울할 때 난 이걸 5분 안으로 이겨낼 수 있어! 하며 몸부터 일으킨다는 가수 이지은(아이유)의 말도 좋아하긴 한다. 나도 자주 써먹는 건강한 방법이고.

다만 잠시 그 날을 즐기는 방법도, 덜 건강할지라도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다 더 다치기도 하니깐.


속이 상해 펑펑 침대에 코 박고 우는 것도 하고싶긴 한데 내가 또 진짜 못 운다. 참는 게 아니라 내숭이 아니라, 펑펑 울고 쏟아내. 라는 걸 간절히 하고 싶은데 혼자 있을 때 운 기억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친구가 괜히 냉혈하다고 한 게 아니다.(영화관에서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안 울었을 때 들었다)

그래서 대신해 '아주아주 슬픈 영화' '가장 슬펐던 책' 따위의 검색어로 찾아 낸 아이들을 메모해 두었다.

하나같이 보고 울었다는 후기가 있으니 저정도면.. 이라는 기대감 반 그러지 않더라도 우울을 더 깊게 즐길 수 있을거라는 마음 반이다.


아래는 그 저장해 둔 리스트들이다.


<영화> 제 8요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오만과편견

하치이야기

플로리다 프로젝트


<책> 소녀처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엄마를 부탁해

로기완을 만났다



물론 저는 이것들은 다 보더라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거라 확신하지만요.

그러니 시간 남으신다면 아주아주 슬픈 작품들 좀 추천해주세요..


또한 우울은 이렇게 글 쓰기에 도움이 되는 감정이라는 것도 막 깨달았다. 고오맙다, 발음도 어쩜 우울이니 너는. 곧 빛이 창문을 넘어 방 벽에 스며들어오기 시작할거다. 너도 이젠 갈 시간이고 난 이제 잘 시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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