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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Oct 28. 2020

그 (1)

나와 찰떡궁합인 그녀, 의 남편

그는 기가 막힐만큼 나와 안 맞는 구석 투성이다. 티키타카가 아주 잘 되는 그의 아내와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하면 더욱 대비되는 모양새다. 그러니깐 그는, 우선 눈치가 없다. 더럽게도 없다. 굳이 해도 되지 않아도 될 말을 입 밖으로 기어코 꺼내 상대의 심기를 톡 하고 건드려버리곤 한다. 톡, 그 시비에 당당히 나는 퍽 하고 되갚아 주면 되려 본인이 소심히 남은 자존심을 부린다. 이 양반아 본인이 건 시비는요.


/

내가 성인이 되고난 뒤 처음으로 셋이 유럽여행을 갔을 땐 말이다. 결국엔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었다. 해외는 자시고 국내여행도 별 다른 관심이 없던 그들인지라 그 여행은 근 10년만에 제대로 된 일주일간의 여행이었다. 그 때문인가 별안간 막중한 책임감에 휩싸였는지 무엇이든지 혼자 해결하려 애를 썼다. 계획을 세우고, 가이드사를 정하고, 길을 찾고, 우버를 부르고... 계획을 짤 당시 나에게도 주도권을 주는가 싶더니만 결국엔 가이드사를 예약한 그였다. 그가 가진 책임감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반자의, 반타의 였던지간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나에게 책임을 양도하기를 바랐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유럽여행 겨우 3달 전에 10일간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고, 그부터 불과 2주 후에 혼자서 일본여행을 갔었던 터였다. 가족 중 유일하게 회화가 어느정도 가능할 만큼 영어가 되는 건 그 뿐이었지만 우로봐도 좌로봐도 그나마 그 낯선 공간에서 덜 긴장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적어도 핸드폰 버튼 몇 번 빠르게 삑삑 눌러 호출하는 택시는 내가 빠를 거라 확신한다. "내가 우버 부를까? 베트남에서 많이 불러봐서 알아 내가 해도 돼" 뱉고 싶은 말을 목 언저리에 꾹하고 눌러담느라 며칠을 애썼다.

일주일 여행 중 중간즈음 되는 날이던가, 도시를 이동하기 위해 기차를 타야 했었다. 기차 출발시간에 여유롭게 맞춰 가자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게 우버 택시를 탔다. 큰 일이 터지기 전에는 작은 일이 기가막히게 징조를 나타내고 불안감을 일깨워준다던가. 예상치 못하게 기차역에 거의 다 와가서 차가 꼼짝없이 막히기 시작했다. 아직 기차시간까지는 괜찮겠거니 했지만 조수석에 타 있던 그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앞자리의 그가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동요되기 시작해 괜찮겠냐고 독촉을 했고, 결국 우리는 눈 앞에 역이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내려 별안간 빨리 걷기를 시작했다. 다리를 휘적이는 사람 세 명에 맞춰 캐리어 3개가 툭탁툭탁 끌려가는 모습이 볼 만 했을 거다. 얼마 안 가 도착한 기차역은 꽤나 넓었고 그는 여기저기 지나가는 역무원을 붙잡아 길을 물었고 우린 그를 쫓느라 걸음을 바삐했다. 드디어 우리가 타게 될 기차쪽 줄이 보였다. 거기서 무사히 끝이었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십 몇 분 간 줄을 서 있는데도 이 줄이 애초에 맞긴 한건지, 기차를 타는데 왜이렇게 줄을 길게 서있는지(출발점이 보이지도 않았다) 의문이 계속되었다. 의문은 불안을 낳았고 그도 다를 바 없었는지 다시 한 번 몇번을 역무원을 붙잡고 이번엔 손에 있는 표를 강하게 가리켰다. 우리 이 기차를 타려고 한다고, 이 티켓, 이 시간이 이 줄이 맞냐고. 그렇게 묻는 그는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평소에 농담의 결이 나와 맞지 않아(여기서도 안 맞는구나) 따분하기도 한 그의 그런 모습은 신선하고 당혹스러웠다. 그런 상태라서인지 의사소통은 한참을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역무원이 드디어 질문의 답을 내었다.

"이 기차 타려면 이 줄에 서있으면 안 돼. 저기 훨씬 앞 줄에 서 있어야 됐고, 곧 그 기차는 떠날거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라고 어버버 대려고 하는데 그의 더 큰 흥분이 앞서버렸다. 기차가 떠날거라는 그 말에 그럼 저 앞줄로 가야지 하는 마음만 앞섰는지 아주 예의없이 줄 서있는 사람들을 제쳐 우리의 캐리어를 끌고 앞으로 가려는 거다. 그를 막으려는 역무원과 그의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가 흥분한 것을 알아 챈 역무원은 다시 그를 잡고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실상은 이랬던 거였다. 우리가 생각한 '기차 출발시간보다 여유롭게'는 그저 한국 기준이었을 뿐이고, 여기서 그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적어도 1시간전에는 와서 줄을 서야 했었던 것이다. 이미 기차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늦은거였다는 걸 그 때서야 알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쪽 잘못이라는 걸 그는 이해했는지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온 것 같았다.

여전히 존재했던 문제는 나의 꾹 눌러놓은 무언가였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표를 환불하고 바로 다음 기차를 예약하는 방법까지 역무원에게 설명을 받고, 표를 재예매하러 갔다. 표를 다시 사러 그녀, 그, 나순으로 줄을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먼저 표를 산 그녀의 몫까지 두 개의 캐리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차례가 되어 표를 사려고 앞으로 나가기 직전 나에게 그 두 캐리어를 맡기고 가버렸다. 갑작스레 나에게 주어진 캐리어는 총 3개였고 나는 내 차례가 되었지만 캐리어에 휩싸여 낑낑대느라 본의 아니게 뒷 사람들에게 잠시 피해를 주었다. 여기서 나는 툭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갑자기 나한테 주고 가면 어떡해. 뒤에 사람들도 많은데" 이번에는 눌리지 못한 말이 곧이 곧대로 날아갔다. 누가봐도 시비조였고 그는 기꺼이 시비를 받아 들였다. 잠시 멈칫하더니 "봄아 아빠가 표를 사야되서 잠깐 맡긴 거잖아. 왜 그렇게 말을 해. 아빠가 미안해. "

시비라더니 사과 아니냐고? 텍스트로 말투까지 그대로 재현할 수 없음이 아쉬워진다. 미안하다는 그 말투와 표정은 그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단어일 뿐이었다.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나는 그 여행 내내 그에게 고마움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이고 있던 그의 모습은 정말 편안한 여행을 하러 온 게 맞나 싶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 답답함이 화로 바뀌어 버렸던 거다. 결국엔 넘쳐버린 본인의 한도가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 상황에도 화가 났고, 미련하게 그걸 넘칠 때까지 이고 있던 그에게도 화가 났었다.

여행간의 그의 모습이 어찌 안 고마웠을리라만은, 우리는 그를 여행 가이드로 데려온 게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그 순간에 내가 화를 낸 이유는, 본인이 기차를 놓쳐버리는 실수를 해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수따위 상관없었다. 낯선 곳에서의 실수는 없으면 어색하고, 또 다른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주는 매력적인 포인트다. 다만 굳어있던 그는 그 실수를 전혀 즐길 상황이 못 됐었고 그 안타까움이 화살로 바뀌어 그를 찔러 버린거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매한 기차를 타고,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뻗어 버렸다. 그 때까지도 서로 품고 있었던 상한 마음에 깊은 피로까지 겹쳐, 방이 그, 그녀와 따로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먼저 조식을 먹으러 가 있겠다는 문자를 보고 조식뷔페로 내려가자 저 멀리 등돌려 앉은 그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말소리가 얼핏 들렸는데, 글쎄 그가 그녀에게 혼나고 있던 게 아닌가.

"서로 입장을 완전히 파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그렇게 애한테 사과만 덜렁 해버리면 어떡해."

그녀가 자식내미를 혼내는 꼴이었고 그의 어깨는 축 쳐져있었다. 쌤통이다.



/

못난 그와 나의 철없음의 연속이었던 일주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을 제외한, 나의 첫 가족 해외여행은 그렇게 마냥 달지 않은 기억으로 새겨졌다.

하지만,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종종 그들에게 넌지시 조르곤 한다. 

엄마 아빠 나랑 나중에 베트남 갈까? 거긴 뭐가 맛있었고 어디 있으면 여유롭고~ 따로 계획같은 거 세우지 말고 가자. 난 그래도 가봤던 곳이니깐 내가 다 해줄게. 택시도 불러주고 아 그리고 나 길 찾는 거 되게 잘한다? 그러니깐 응?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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