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봄 Jan 07. 2021

눈, 겨울, 바람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하여

올 겨울 두 번째 눈이 내렸다. 작년에는 진눈깨비도 포함해 꼬박 두 번이었는데 부디 횟수를 서둘러 채워버린 게 아니길 빈다.

언젠가의 모임에서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한 담소를 나눴다. 

산책을 하다 바람이 머리칼을 흩트리는 순간, 마당 어딘가에 있는 해먹에 누워 여유를 즐기던 순간. 각자의 살아있는 순간을 공유했다. 짧은 담소 안에 나는 무어라 할 답을 내지 못했다.

눈이 내리고 있다. 꽁꽁 싸매고 말 그대로 펑펑도 내리는 함박눈을 맞을 법도 하건만 창을 열어 한 두장 찰칵 찍어본다. 촬영음 아래로 그새 아이들이 나와 꺄르르 대는 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을 놓쳐서 떨어트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문을 닫는다. 눈이다 하고 뛰어나가는 것만이 겨울의 로망이 아니다. 오늘 안 나가도 나를 위한 다음 눈이 또 내리리라 기대하며, 그렇게 겨울을 지낸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뒹굴고 있자니 공기가 조용하다. 사진을 찍은 핸드폰으로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 '겨울 asmr'을 검색한다. 요즘 세상엔 손가락질 몇 번으로 눈 오는 날 모닥불을 키는 거라던지, 캐롤이 흘러나오는 거리 속 인파들에 둘러싸인다던지 그런 게 가능하다. 심지어 해리포터 기숙사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허함을 가짜 백색소음으로 채우는 건 자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그 헛헛함이 가시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다시 이불속에 하체를 파묻는다. 틈새가 생겨 버린 창을 타고 겨울바람이 들어온다. 눈에 비해 강한 바람이 아니어서인지 그  적당한 차가움이 역으로 따듯하다고 하면 우스울까. 

내일 집을 나서면 길은 온통 어제 본 색과 달라져있을거다. 채 떨어지지 못하고 나뭇잎 사이사이를 물들였을 그것들도, 누군가의 설렘이 뭉쳐져 길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을 그것들도 그 하얀 게 뭐라고 내일 나의 기분을 책임져 주겠지. 

이 맘 때 즈음 친구는 겨울 냄새가 난다고 한다. 둔감한 후각은 공감을 해주고 싶어도 하지 못하지만, 괜히 호흡을 크게 해 본다. 차갑고, 하얗고, 시린 겨울 공기를 힘껏 들이켜 본다.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말할 거리가 생겨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그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