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쓸 다정에 대해서는 그리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어렸을 적에 빈번히 만난 다정 외에 더 적합한 게 뭐가 있을까.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자면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학교에는 운동장 저 끝 정문 가까운 쪽에 정자가 하나 있었다. 거대하거나 기와가 쌓아져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벤치라고 하기엔 규모가 있었고 제대로 지붕도 갖추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 모든 사람들이 그리 부르는 곳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가 처음인지 깨닫기도 전부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는 내 하교 담당이 되어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라던가 집이 어린아이 혼자 오기에는 멀리 위치해있어 위험하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여름이고, 겨울이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청소 당번을 맡아 늦게 끝나든 상관없이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러 왔다.
교실 창문으로는 정자가 아주 잘 보였고,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조회를 하기 전 그곳을 보면 어김없이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덩치 있는 몸집에 애착하는 노란 조끼를 입고 정자에 앉아 있는 사람. 저학년에서 6학년 때까지 하루도 거른 적이 없으니 와 있는 게 당연한 데도 나는 그렇게 확인하는 시간을 좋아라 했다. 하루는 내가 어김없이 창문을 확인하는데 옆자리에 있던 친구들까지 우르르 창문 쪽으로 몰려와 "봄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오셨다! 저 분이 너네 할아버지야?"하고 소란스러워졌던 적도 있었다. 아니 이거 이렇게 써 놓으니 마치 연예인이라도 온 것 같네. 그치만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으쓱한 기분도 들었다. 맞아! 우리 할아버지야. 나 데리러 온 거야.
아무튼 (1학년 때부터 데리러 왔다고 가정하면) 6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손녀의 하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웬만한 우리 학교 사람이라면 알만할 정도의 위치가 되어있었다.
띵동댕동- 하교 종이 울리면 교실을 나섰고 건물을 나서는 순간 저기 정자 쪽을 보면 할아버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혹시라도 엇갈릴까 봐 30분씩은 일찍 와서 앉아있으면서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건물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자 나를 찾으러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아이들 틈에서 흐린 눈으로 제 손녀를 발견하면 한쪽 손을 인사를 하듯이 높이 들고 흔든다. 마치 내가 못 보고 지나칠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이.
가까이 다가가 왔어? 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인사를 건네면 아이구 우리 손녀 피곤했지, 와 같은 휴먼 드라마 같은 대사를 치실 분은 아쉽게도 아니다. 인사를 받은 할아버지는 먼저 한 발 앞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 체구와는 당연히 비교도 안되게 컸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할아버지는 또래 친구분들보다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항상 같은 속도로 걸어도 보폭에 차이가 나 거리가 벌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따금씩 걸음을 멈춰 속도를 맞춰주었다.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경기도와 거의 맞닿아 있는 서울 끝자락에 있는 다녔던 나의 하굣길은 흙내음이 가득했다. 가꾸어지지 않아 울퉁불퉁한 흙길, 길과 길 아래쪽으로 흐르는 개울, 그 개울로 내려가 놀 수 있도록 설치된 (지금 생각하면 설치되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위험한) 사다리, 이름 모를 누군가의 텃밭, 초록 들풀들 사이로 삐죽이며 피어나 있는 민들레 꽃들. 초등학생 눈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자연이 선물한 놀이터였다.
저 멀리 있어 보이지만 저 이상 멀어질 일은 없는 할아버지를 앞두고 솜털이 난 민들레 꽃씨를 따 후 하고 힘껏 불어보기도 하고, 진한 노란색의 작은 꽃잎을 가진 꽃의 줄기를 똑 하고 따서 나온 꽃잎 색을 닮은 진액을 손톱에 발라 매니큐어처럼 칠하기도 하고. 진액은 꽤 그럴싸하게 손톱을 물들여줬지만 냄새가 고약했다.
그렇게 이리 새고 저리 새는 하굣길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함께 있었다.
길고 길었던 하굣길의 역사는 중학생이 되면서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어질 뻔했던 역사를 말리고 말려 끊어내었다. 그도 그럴 게 중학생이나 됐는데 데리러 올 사람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구심과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의 창피함이 있었고, 중학교는 아파트 단지에서 도보 5분이 될까 말까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등하굣길에 길을 건널 필요도 없었고, 중학교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도 있어 그야말로 안전하면 두말할 것 없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너무나 당연하게 오려고 하는 걸 몇 번이나 설득하고 설명해야 했지만.
그 시절 하교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할아버지가 함께 그림에 담긴다. 제 속도 모르고 이제는 그만 와도 된다는 손녀의 말이 내심 서운했을까. 그렇지만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고 온전히 내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도 알았으면 참 좋겠다.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마음속에 꾹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