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은 적은 없었다. 혼자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는 요즘에도 하루에 세네 번씩은 나도 모르는 새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정도이니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하긴, 과연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적대적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어느 누구나 갈망하는 사랑은 내게도 역시 그랬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사랑을 항상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약속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어렸을 적부터 상상한 사랑의 형태이니 말이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사랑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지 스스로에게 묻는 중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도 복잡해서 무엇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아 이 참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사랑에도 때가 있을까?
나에게 사랑은 언제나 동화였다. 예쁜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누군가가 나타나 내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클리셰가 가득한 동화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올(와야 할) 그 순간을 위하여 잘 기다리자는 생각뿐이었다. 혼자 생각하기를, 그 순간은 바야흐로 20대 초반부터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학 진학 전에는 이성에게 관심을 둘 정도로 성숙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오랜 기다림 끝에 22살 첫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30대 초반을 지내고 있는 지금 말 많고 탈 많던 몇 번의 연애를 했다.
사랑이 곧 연애라고 볼 수도, 연애의 진실성을 어찌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겠지만 솔직히 난 나의 연애 이력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주위를 보면 다들 쉽게 시작하고 끝내는 연애를 나 혼자 어렵게 생각하나 싶기도 하거니와, 사실 그동안 썸만 타다 흘려보낸 인연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간혹 남자 보는 눈이 까다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내 전 남자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되지도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성에게 무언가 뚜렷하게 원하는 것이 있지도 않고, 그냥 그 사람의 매력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쉽게 호감이 생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나는 썸이 끝나갈 때마다 아주 상투적이고 평범한 변명을 앞세운다. ‘사람은 정말 좋은데,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라고. 최근에 소개팅에서 만난 어떤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에게 그 사람에 대해 말할 땐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내가 내 마음을 설득하기 위한 말들일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때가 아님을 고하고 떠나보낸 이들이 혹시 내 전 남자친구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얼마 안 가 헤어졌을 가능성이 높겠지 싶다.
이미 내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랑을 시작할 때 결코 때라는 것은 없음을. 다만, 나는 이 사람이 아닌 내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올 때를 더 기다리는 것임을.
2.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한가?
사랑과 노력은 비례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신조다. 사랑은 노력과 어울리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사랑의 시작은 노력으로 될 수 없다. 사람이 어떠한 의식을 갖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것이 ‘노력’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버린 후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인데.. 이렇게 이질적인 둘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냐는 말이다. 내가 해본 몇 번의 연애 중 다수는 그리 길게 지속되지 못하고 끝을 맞았다. 물론 서로 간의 호감과 관심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이후 나는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그 순간 호감을 사랑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을 했다면 우리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물론 그때 당시에도 내가 노력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겠지만, 노력을 했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결말은 똑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사랑임을 노력하려는 사람의 모습이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 사람들과의 연애를 끝냈을 때 내 속은 후련했다. 그리고 나에게 진실된 마음을 보여준 그 마음에 분에 넘치게 감사하며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다.
이때까지는 여지껏 내가 참사랑을 경험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에 정말 진실된 사랑을 하게 되면 그땐 사랑도 노력해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이번엔 나 또한 열심히 사랑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이별을 할 때였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시 난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이별인 만큼 상처를 받았기에 이 마음을 저버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별을 가져다준 그는 마지막 통화에서 우리가 노력을 통해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을 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마저도 난 사랑과 노력의 관계에 대해 꽤나 확고한 생각을 가졌던 듯하다. 이미 무너진 관계인데 노력만으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용기라면, 그럴 만큼의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의 제안이 진심일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무 힘든 이별을 겪고 있다 보니 나오는 자기 방어적 말 같은 거겠지 생각했다. 나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이런 이별을 안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랑의 지속을 위하여 서로 간의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사랑이 아님을, 혹은 사랑이 이미 끝났음을 인지한 채로 단순한 노력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3. 사랑은 영원할 수 있는가?
사랑은 영원과도 같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과연 사랑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다 보니 사랑에서 영원을 바라는 생각 자체가 옳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사랑의 결말은 ‘이 둘은 결혼을 해서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였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평생을 약속을 하고,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 인생을 함께 살아내는 것.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생각이 이상적이고 바보 같았다는 것을 비로소 사랑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이별이 그러하다. 영원히 날 사랑해 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어느새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영원히 우리의 관계를 이끌 줄만 알았던 사람인데 포기하겠다는 고백을 할 때. 나는 그때 슬픔과 좌절을 뒤로하고 저 생각 자체가 가능한 논리인지 되물었다. A가 있고 B가 있어야 C라는 결말이 나오는 줄만 알았더니, 항상 이별을 말하는 사람들은 A도 B도 없이 C만을 던져버리니, 그 속에는 어떠한 논리도 없었다. 그러니 이별의 과정에는 '모르겠다'라는 허황만이 난무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게 바로 그 순간에 나와야 하는 적당한 대사일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변하는 것 같다. 아니, 변한다더라. 그러니 영원하지 않은 게 맞다. 그 순간 이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없다. 앞서 말했듯 나 또한 사랑은 노력하면 안 되는 대상이라 생각했기에 사랑의 비영속성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다. 분명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아직도 나에겐 그 언젠가 동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남아있다. 다만, 예쁜 옷을 입지 않고 있는 모습이어도 좋다. 조금 바보 같더라도 단순하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를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 뿐.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원래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매력적인 법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