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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민들레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

by 미드스태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에서 ‘민들레’라는 조연이 나온다. 여러 사건들로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정신병동에서도 민들레만큼은 매일을 복사+붙여넣기 한 사람처럼 똑같다. 좋게 말하면 모든 상황에 의연히 대처하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미 없고 재미도 없다. 대신 그만큼 남들의 인정을 많이 받는다. 연차를 불문하고 차기 수간호사라고 불릴 만큼 동료들에게는 그저 믿음직한 일꾼으로 자리매김해 있는 듯했다.

어쩐지 민들레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별안간 회사 선배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민들레가 나 같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닌가. 뭐가 닮았다고 느낀 걸까 싶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느낀 그대로를 느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쨌거나 조용히 자기 할 일을 끝내는 모습, 감정에 쉬이 휘둘려 일을 그르치지 않는 모습..? 좋은 모습인 것 같긴 하지만 그만큼 융통성은 없다는 게 흠이다. 여하튼 내가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캐릭터와 닮았다고 하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어찌 됐든 어디서든 크게 밉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탄탄대로를 걸어 수간호사가 될 것 같았던 민들레는 결국 드라마 후반부에 간호사 일을 그만둔다. 중간에 여러 사정이 많았지만 요약하자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그녀에게 ‘간호사’란 그저 생존의 방법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퇴직 소식을 듣고 모두가 “아니 잘 다니던 직장을 왜?”라며 놀라거나 열심히만 일하던 그녀가 지쳐서 잠시 쉼이 필요하여 저럴 것이라고 넘겨짚었지만, 그녀의 결심은 누가 뭐래도 확고했다. 지금까지 간호사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주 오랜만에 찾은 여유 속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성인이 된 후 난생처음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교류를 하고 그 속에서 나오는 행복감을 처음 맛본 그녀는 그 달콤함에 한껏 취해버린 듯했다. 그런 그녀는 친구를 따라 별안간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전국을 항해하는 크루즈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생각보다 약간은 뜻밖의 전개였지만 지금껏 행복을 모르고 열심히 살아온 그녀가 이런 반전적인 결심을 한건 어쩐지 짠했다. 지금까지 자의에 의해 살아온 삶의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들에 대한 답답함을 한 번에 찢어발겨버리는 시원함도 있었다. 민들레가 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내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니 왜인지 나의 삶을 민들레에 자꾸만 투영해 보게 된다.

누가 봐도 천직이었던 간호사의 일을 접고 뒤늦게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선 민들레. 나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꿈도 못 꾸는 결정을 하고 떠나버린 민들레.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구분과 확신은 어떻게 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지금 일을 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면서 오는 행복감은 이를 테면 나에게는 이 정도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만큼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의 성취감, 뿌듯함. 일을 함께 하는 동료들이 꽤 괜찮은 사람들일 때 거기에서 오는 감사함, 안도감. 가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어엿한 직장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명예로움(?), 이게 다인 듯하다. 사실상 직장에서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한 뿌듯함은 이상할치만큼 없다. (순간적 으쓱함을 줄 뿐이다.) 오히려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그 인정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줄 때 제일 값지다고 생각한다. 남으로부터 받는 인정은 일시적인 것이며, 내가 못할 때는 언제고 돌아설 수 있는 인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이렇게 보면 난 이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일과 행복이 비례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겠으나, 생각해 보니 나에게 일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이렇게나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은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은근한 충격을 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회사에 출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일을 하며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출근하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지 몸소 느끼고 있는 최근이다. 매일 아침 몸이 무겁다는 핑계로 오늘 하루 쉬겠다는 톡을 팀장님에게 썼다가 지웠다가.. 그런데 그 바로 위에 떠있는 팀장님과의 대화가 아파서 쉬겠다고 한 같은 내용인지라, 최소한의 양심을 챙기며 이내 오늘의 지침과 아픔은 잠시 미뤄두자고 결심한 후 썼다 지웠다 한 톡을 다 지워버리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대체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매일 출근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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