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화장실 문에 의미심장하게 뚫려있는 구멍을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고, 어두운 밤길에 수상하게 들리는 발자국소리를 경계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아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나를 때려도 좋아서 한 장난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은 적도 있을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늦은 저녁시간에는 핸드폰을 얼굴 가까이에 올려 전화하는 척을 한 적이 있을 것이며, “이게 뭐니! 에그 망측해라.” 부모님마저 자신의 복장을 보고 꾸짖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가해자의 잘못을 탓하지 않을까? 이러한 사회를 만든 데에는 누구 책임일까?
여느 때와 별 다를 바 없이 연세대학교 병원에서 심초음파 검사를 마쳤다. 나는 침대에 앉아 간호사가 건네주신 종이휴지로 끈적하게 묻은 젤을 닦아냈다. 검사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풀고, 풀어 헤처진 옷을 주섬주섬 여미고 있을 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우연치 않게 출입문 쪽을 살폈는데, 어떤 한 아저씨가 방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삐이-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시끄러웠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느려졌다. 시선은 자연스레 그의 목 카라, 광대뼈, 그리고 동공을 따라갔다. '어라?' 눈이 마주친 것 같다. 두뇌가 잠시 재부팅이 걸린 듯 멈췄다. 정신을 차리자 그 남자는 이미 그 곳에 없었다. '어?' 오만가지 생각이 빛의 속도로 빠르게 스쳐갔다.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비상! 비상!' 고개를 숙여 옷매무새를 만지니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게 끈을 묶다 만 모양새였다. ‘봤나? 봤나 봐. 본거 아니야?'
'밖에 나가면 그 사람이 있는 거잖아. 못 나가겠어.'
심장이 쿵하고 한 번 울리면, 쾅할때 한 발짝을 더 걸었다. 모든 중추신경이 저너머로 향했다. 나는 오로지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문 밖으로 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암시를 걸어도 안면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입가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던 나는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주시했다. 곁눈질로 둘러보다 우연히 그 사람을 찾았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그의 옷차림새와 풍기는 분위기가 똑같았다. 나는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 소심한 고갯짓으로 남성을 가리켰다. “엄마, 저 사람이 내 몸을 본 것 같아.”
주변 사람이 들을 수 없게 속삭였다. 엄마는 내가 평소와 같이 말하고 나서 내 말을 알아들었다. 엄마는 자신이 이야기해보겠다며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완강하게 붙잡았다. 막상 가서 따진다고 하니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심장초음파실에 존재하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피해자'라는 상태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심초음파를 하러 온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을 합치면 적어도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과연 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자에게 시선 강간을 당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분들 중 상당수가 나이 든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과연 나를 보며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유난이라고 시끄럽다며 소리치지 않을까?
오히려 내가 역공격을 당하진 않을까 무서웠던 나는 그 사람의 눈을 한 번 더 보게 된다는 것이 소름 끼쳤다. 나는 부모님의 손을 끌어당기며 심혈관 병동을 급히 벗어났다. 그리고는 병원 본관으로 들어가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푸드코드에 앉아 천역덕스럽게 떡볶이를 시켰다. 하지만 떡볶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꾸만 아까의 모습이 생각났다. ‘초음파실 안을 살폈을 때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데, 설마 젤로 닦기 전부터 본거 아니야? 아니야, 커튼이 가렸을 거야. 그런데 나를 보고 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불쾌함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나는 엄마에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병원에 오기 무서울 것 같아 그 사람을 찾아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귀찮아하며 싫증냈다. “그때 이야기했으면 됐잖아. 그 사람 이미 갔을텐데.” 아빠는 옆에서 엄마 귀찮게 하지 말라면서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나를 야단쳤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나서줄 줄 알았는데, 역시 엄마 아빠도 평범한 부모였구나.' 화가 나기보다 씁쓸함이 더 컸다. 그 날 엄마 아빠가 한 말이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다. '만약 시선 강간이 아니라 강간이었다면 그때도 엄마 아빠는 별 문제 아니라며 넘어갈까?' 엄마, 아빠가 보여준 모습으로는 법원처럼 합의하고 흐지부지 넘길 것 이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공감하지 못한다는 게 더 슬펐다.
엄마는 기어이 내가 눈물을 보고서 가해자 측의 변명을 들으러 갔다. 그 사람이 하는 말로는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이 되었지만 불안함을 없앨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럼 왜 초음파실을 들여다 본거야? 볼 이유가 없잖아.' 엄마가 녹음까지 했다며 핸드폰을 보여줬지만 목소리조차 트라우마가 될 까봐 겁나서 듣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런 일을 겪을 줄 누가 알았을까. 가해자는 내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우리 엄마는 방관적 태도로 이 상황을 외면하려 했고, 아빠는 도리어 내가 잘못 본 거라며 나를 나무랐다. 둘 다 형편없는 대처였고, 2차 가해자였다. 나는 절대로 용서하지도, 참지도, 뒤에 숨지도 않을 것이다.
왜 늦게 돌아다녔어?
왜 짧게 입었어?
왜 조심하지 않았어?
왜 무방비하게 굴었어?
왜 끝까지 저항하지 않았어?
왜 집에 들였어?
왜 강간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굴었어?
왜 멀쩡해?
너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너가 유혹한 거 아니야?
당할만 했네.
둘 다 잘못한 게 있네.
피해자를 탓하는 그 모든 말들이 전부 2차 가해다.
이 말을 듣고도 분노하지 않았다면 이 사회는 교육에 실패했다는 반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