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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 Kim Apr 18. 2018

몬트리올 팝업식당, 마이너스 키친의 탄생

캐나다에서 집밥을 이야기하다


한국에 살 때는 정신없이 일하는 짬짬이 주말장에 들러 묵이니 호박꼬지니 사서 지져 먹고 삶아 먹고 하는 게 낙이었다. 살던 곳이 바뀌었다고 그런 내 취미는 크게 변하지 않아, 이민을 떠나 온 여기서도 주변 친구들은 식도락가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도 나는 지인들과 자주 모여서 장을 봐 요리를 해 먹으면서, 또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몬트리올 최대 규모의 재래 시장, 장딸롱 마켓


아니 그래서... 몬트리올에서 젤 괜찮은 한국 식당은 대체 어딘데?
 

몬트리올로 이사 오고 만난 친구들이 던지던 반복되는 질문, 이 질문이 모든 일의 시발이었다. '여기 한식당들은 아무래도 로컬의 입맛에 맞춘 맛이라 내 취향이 아니다’, 그 대답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난 한식이 별로 그립지 않다'는 둥의 말로 얼버무리기도 했지만, 친구들은 날이 갈수록 더 경쟁적으로 새로운 한국 식당 리스트를 내게 가지고 왔다. 그렇게 성화에 못 이겨 끌려간 식당에서 그들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찌개가 내 입 안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게 바로 진짜 어뗀띡(authentic)한 한국의 맛이라는 내 승인이 떨어지기를.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번번이 이어지는 나의 퇴짜. 한국 식당 리뷰에 끝이 없이 까칠한 나를 지켜보던 몇몇 지인들은 투털 댔다. 왜? 이 정도면 그렇게 나쁘지 않잖아.


아, 내 까칠한 입맛의 정당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나도 정갈한 나물 반찬과 된장국 같은 밥 한 끼 식사가 그리울 때, 이러저러한 한국 식당을 다녀봤다. 하지만 굶주린 영혼까지는 데피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어디를 가든 그럭저럭 먹을 만한 한국식당이 아주 없겠냐만은, 시판 장류로 양념한 달달한 잡채나 매콤한 제육볶음의 몰개성한 맛. 그건 고작해야 배고픈 대학 자취 생활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입안에 쫙 휘감기는 인스턴트의 맛의 익숙함 역시 내 이십대의 몇 할을 차지하는 향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결코 내가 곧 죽어도 친구들에게 먹여주고 싶은 내 기억 속의 ‘멋진 한국 음식’은 아니었다.


뿌리니 줄기니 버릴 것 없이 다양한 푸성귀들을 말리고 삶아 별 다른 양념도 없이 묵직한 집간장 몇 방울만 털털 뿌려 담아내는 다양한 계절 나물들, 쿰쿰한 된장을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의 맛, 계절마다 바뀌는 다양한 채소로 담는 끝없이 많은 종류의 계절 김치들... 이런 게 내가 자랑하고 싶은 어린 시절의 맛이라는 걸, 말로 설명하기는 참 쉽지 않았다.

 

마이너스 키친의 탄생


가성비가 모두의 화두처럼 되어버린 우리네 삶. 한통에 오천 원이 채 안 되는 시판 장류는 이미 요리 꽤나 한다는 주부 9단의 주방 찬장에도 자연스럽게 안착한 조미료가 되어버렸다지만... 좀 서럽다. 이십여 년 즈음 시간이 흐르고, 우리 다음 세대가 기억하는 집밥의 맛이 영양가 다 빠진 탈지 대유(기름을 짜고 남은 콩의 찌꺼기, 단가 절감 및 생산 기간 절감을 위해 사용된다)에 이런저런 첨가물을 넣어 맛을 낸, 어느 집을 가도 별반 다를 것 없는 획일적인 맛, 공장에서 만든 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맛이라는 상상을 하면...


한국에서 가져온 장들이 떨어져 가던 어느 날, 나는 장을 담았다. 그리고 한국 음식의 대부분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성 넘치는 '집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띄운 메주를 소금물에 넣고 30-40일 가량 발효시킨 후 분리하면 간장과 된장이 된다.

그렇게 나는, 내 단골 한식당을 묻던 친구들, 건너 건너 친구의 친구들, 그리고 때론 모르는 사람들을 우리 집 식탁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부엌의 이름은 Minus Kitchen, 불필요한 것은 빼고 꼭 필요한 것만 넣은 Back to bagics의 상차림이 더 풍성한 식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4년 전 문을 연 서퍼 클럽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두서너 달에 한번 꼴로 문을 연다. 우리 집 거실이 좁아 받을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고 또 좀처럼 자주 문을 열지 않는다는 이유 덕분에, 예기치 못하게도 식탁은 늘 만석이다. 때마침 몇 해 전에는 넷플릭스의 요리 다큐멘터리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 정관스님이 소개되며 주목을 끈 덕분에, 더 깊은 농도로 한국 음식과 발효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징그럽게 오래 머문 이번 겨울도 이제 슬슬 떠날 채비를 하는 듯하다. 날이 피면 여기저기서 싹을 틔울 다양한 식재료를 미리 살펴보며, 나는 다음 식사 준비로 벌써 들뜬다. 서로를 모르는 다양한 인종과 나이대의 사람들이 둘러앉은 내 식탁 위로 젓가락이 얼기설기 뒤섞이는 저녁 식사 시간을 상상하며. 그렇게 식사를 나누고 끝내는 친구가 되어서 우리 집을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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