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어필의 팜므파탈은 그만. 이제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느와르가 필요하다
한국의 느와르 영화는 미국의 필름 느와르와 홍콩 느와르의 흥행요소를 모두 섞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홍콩 영화들은 범죄 세계를 무대로 남성적 유대감을 강조하는 액션물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느와르는 이러한 홍콩 영화들의 큰 틀을 따라간다.
거기에 한국 영화는 필름 느와르의 '팜므파탈'이라는 캐릭터를 가져온다. 미국의 필름 느와르에서 팜므파탈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성적 매력과 음모를 가지고 남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캐릭터라면 한국의 팜므파탈은 거기서 ’성적 매력과 음모‘라는 요소를 가져와 적극 활용한다. 무겁고 진지하기만 할 수 있는 느와르 액션물에서 팜므파탈은 영화의 장신구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느와르에서 팜프파탈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는 내용면에서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 홍보거리 등 철저히 도구적인 역할로 쓰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느와르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네러티브와는 별개로 시각적인 잔인함과 성적인 요소들이 불필요하게 이용되는 것이 불편하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차이나타운에서 사는 대부업자(김혜수)가 후계자로 점 찍어둔 양 딸(김고은)을 시험에 들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갓난아기 때 지하철 사물함에 버려진 일영이(김고은)을 거둔 마우희는 차이나타운에서 대출이자를 장기로 받는 범죄 조직의 보스이다. 마우희는 일영이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범죄로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엄마‘라고 불린다. 조직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잔인하고 냉철하게 키워진 일영이는 어느 날 자신이 죽여야 할 석현(박보검)의 친절함에 처음으로 인간애를 느끼고 도구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흔들리게 된다. 이를 알아챈 마우희는 특별히 아끼던 일영이와 생존의 게임을 시작하게 되고 결국 일영이는 마우희의 시험에 걸려 차이나타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의 느와르 사조에서 차이나타운이 여성을 중심으로 한 느와르 영화라는 점은 충분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관객들이 남성적 유대감과 자극적인 범죄물에 싫증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차이나타운은 한국 느와르 사조에 기점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무게감 있는 남성적 느와르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고 차이나타운은 차별화된 전략을 가진 영화로만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역사적 배경 없이 그저 흥행한 미국과 홍콩의 느와르 영화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 내는 한국 느와르는 그 사조에 개성을 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남성주의 범죄 액션 액션물+팜므파탈의 공식을 가진 한국 느와르가 점차 시대와 사회에 맞추어 다양화되고 변화하며 '한국의 느와르'만의 특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 첫 여성 느와르 영화, 현재의 한국식 ’베끼기‘ 느와르에서 벗어난 차별화 된 영화 ’차이나 타운‘이 네러티브 면에서는 그닥 좋은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많은 호평과 다양한 반응을 얻고 있는 까닭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