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새해가 밝은 지는 며칠이 지났지만 1월 초에서 중순까지 이곳은 휴일 분위기다. 주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사는 바이에른 주는 동방박사의 날인 1월 6일도 공휴일.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전이나 이후부터 1월 6일이 있는 주까지 휴가를 내는 경우가 많다. 회사원이라면 많은 동료나 클라이언트들이 휴가 중이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자영업자들 역시 마찬가지기에 이 기간에는 많은 가게들과 음식점들도 문을 닫는다. 지난주에 문득 생각나 들렀던 옛 단골 카페는 1월 8일까지 요트 여행을 다녀온다는 안내문을 붙여 두었더라.
남편은 원래 크리스마스 이전에 마무리하기로 되어 있었던 프로젝트를 일시중지하기로 했다. 다들 쉬고 노는 분위기인데 굳이 스트레스를 계속 받으면서 끝까지 마무리하기보다는 중간에 숨 좀 돌리고 나서 다시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하겠다는 이유다. 다행히 선배와 클라이언트 모두 이해를 해 주었다. 심지어 본인들도 그럴 때가 있었다면서, 이럴 때는 아예 푹 쉬어주는 것이 낫다는 격려까지.
나는? 굳이 한 달까지 휴가를 안 내도 이 시기는 휴가나 다름없다. 나의 일은 9할이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는 일. 그리고 12월 중순부터 많은 고객사들은 겨울 휴가철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는 애초에 회사에서도 일을 많이 계획하지 않는다. 일부러 크리스마스 기간에 휴가를 쓰지 않고 이른 퇴근과 여유로운 업무 시간을 즐기겠다는 이들도 많다.
동시에 이전 글에서 언급한 사랑니 발치 덕분에 (?) 나에게는 이틀 간의 병가가 생겼다. 딱히 요청하지도 않았고, 필요한 줄도 몰랐는데 발치 후 병원에서 이 사람은 이틀 동안 일하는 것을 금지한다 (!)는 진단서를 함께 주더라. 쉬고 놀기 아주 좋구나.
나도 같이 휴가를 내고 한국을 한 달 다녀와도 될 정도의 시간이다. 나는 유럽연합 국가들 내에서는 원격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다른 나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올해 이미 충분히 해외여행을 다녔기 때문인지, 쌀쌀한 겨울 날씨 때문인지, 딱히 가고 싶은 여행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가까운 체코나 한번 더 다녀올까 했지만 11월에 다녀온 곳을 또 가자니 끌리지 않았다.
결론은 독일, 그것도 바이에른 안에 있자!
대신 지금까지 안 가본 곳들을 탐방해 보자. 유명하다는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도 다녀오고,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밤베르크도 다녀오고, 크리스마스 이후에도 마켓이 열려 있던 베르히테스가덴도 다녀왔다. 뮌헨에 있는 날에는 미술관을 방문하고 전시를 관람하며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도시 곳곳에 위치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심히 다녔다. 나는 오후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평소 평일에는 저녁 시간을 여유롭게 내지 못했던 남편이었기에 특히 이 평일 오후와 저녁 시간을 매일같이 잘도 활용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 이제 2주 차.
평일에 어디도 가지 않는 날들, 외식보다는 집에서 이미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 먹는 날들. 가끔은 심심해서 보던 소셜 미디어나 웹툰을 계속 또 보고, 매일같이 누워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는 일상. 물론 헝가리어 학원 수업과 가스타이그의 각종 외국어 소모임도 다시 시작했다. 긴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일상은 또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이제 설날까지 지났으니 진짜 2023년 새해가 시작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