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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라고 생각하는 E

by mig

한 달이나 푹 쉬고 놀았더니 잔잔한 일상이 반갑다. 마침 연초까지 따뜻했던 날씨가 다시 흐려졌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보내는 나날들이 많아졌지만 참 좋다. 침대에서 뒹굴뒹굴, 따뜻한 쇼파에 누워 뒹굴뒹굴. 이런 거 보면 가끔 '아, 사람들 별로 안 만나고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좋다. 사실 나는 I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MBTI 테스트 결과의 첫 알파벳, 내향성 I 말이다.


MBTI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오래 인기를 끌기 전에도 이 테스트를 해본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학교나 회사에서 하는 행사에서나, 재미있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도는 온라인 링크로 말이다. 아마도 가장 정확했을 것은 한국 신입사원 연수에서 했던 진짜 MBTI 테스트였을텐데. (거의 책자 수준으로 많은 문항에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연수 기간 동안 하도 많은 것들을 해서 그런 테스트 결과 따위(?)는 바로 잊어버렸지.


온라인에 도는 것은 간략한 버전으로 진짜 MBTI랑 상관이 없다는 말도 있다. 아니,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 말로는 '그런 게 있다' 정도로만 배우지 학술적으로 인정받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완전 나잖아! 너잖아?!' 하는 면이 있으니 인기를 끈 것 아닐까? 뭐 어쩌면 예전의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어떠한 그룹을 만들고 그 그룹의 일원이 되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모인 결과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나는 몇 년에 걸쳐 이 테스트를 하면서, 그리고 세네 가지 언어로 각각 다르게 해 보면서 매번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세 개 정도 타입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는데, 그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맨 처음의 E, 그리고 맨 마지막의 P이다. 꼭 MBTI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성격 테스트를 하면 항상 나의 결과는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 자신이 딱히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기본적으로 나 아닌 생물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편이다. 아예 접점이 없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유명인들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고 아는 것도 많지 않다. 동물들 역시 막상 보면 귀엽다는 생각은 들지만 내 눈앞에 있지 않는 한 관심이 생기지는 않고 반려 동물을 들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가까운 친구들은 너무나도 좋고 아끼지만, 자주 먼저 살갑게 연락을 하는 편도 아니다. 하고 싶은데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부를 묻거나 연락을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환경에 놓였을 때도 그렇다. 예를 들면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이 하나 없었지만 뭐 그렇다고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다. 각종 활동이나 모임에 참여할 때도 모임 자체의 주제에만 관심이 있지 추가적으로 사람을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무대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 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걸진 않지만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나눈다. 다만 남에게 관심이 없는 성격 탓에 정말로 상대에게 궁금한 것이 없을 경우가 많아 다양한 질문을 먼저 던지는 데는 서툴다. 먼저 손을 들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학창 시절 내내 반장, 회장, 동아리장, 과대 등등 쓸 수 있는 감투는 거의 다 써왔다.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을 확실히 선호하기는 하지만 어떤 모임에 나갈 때 몇 명이 오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이면 잔뜩 신이 난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찾으러 다니지는 않지만, 새로 알게 된 사람이면 보통 그 흥분이 더 크다. 많은 이야기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충분히 친하고 가까운 친구이더라도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즐거움이 지속된다. 저녁이나 밤늦게 만남이 끝난 경우에는 재미있었다는 기분에 잠에 바로 들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며칠 동안이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콕만 하고 있어도 그건 또 그거대로 좋다. 참나. 그래서 내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그 정도는 얼마인지는 계속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할 것 같다. 나 하나를 알아가는 데도 평생이 부족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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