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미래를 그린다는 것
한국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는 유튜브를 볼 때 뜨는 광고들이 일반 티비를 볼 때 나오는 광고와 대부분 같다. 5초짜리 짧은 광고라 하더라도 TV용 광고를 짧게 자른 정도. 어떤 영상들을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광고들이 나온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쓰지 않는다. 우리에게 유튜브는 TV의 대용이다. 각자 폰에는 유튜브 앱도 없고, 항상 거실 TV로 감상한다. 특정 유튜버를 구독한다기보다는 로그인도 되지 않은 채로 주로 한국 방송국들의 채널을 본다. 정말 TV를 대체했군. 그렇기에 중간중간 광고가 나오는 것이 거슬리지 않는다. TV를 봐도 그러니까.
최근 몇 주 동안 자주 보게 되는 광고는 이케아 광고. 여러 버전 중 하나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자주 보는 것은 빈 집에 커플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각자의 상상으로 그 집을 채워가는 광고다. 여자는 아늑하게 꾸민 집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운 일상을 그린다. 남자는 어린아이가 낮은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이 광고를 본 뒤 우리 부부가 한 생각은?
“쟤네 곧 헤어지겠네.”
모두 각자가 그리는 이상적인 ‘집’의 모습을 이케아와 함께 그려보라는 광고의 메시지는 안중에도 없는
뜬금없는 감상인가? 하지만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이 생각을 했구만.
‘자신’의 공간을 갖고,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하는 여자와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남자. 특히 아이가 있는 모습을 그리는 쪽이 남자라는 데서 우리 부부는 “저 커플은 분명 사귄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나누지 않은 게 분명해.” 라며 진지한 분석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냥 웃어 넘기기엔 우리에게는 꽤 현실적이고도 가까운 주제라 둘 다 5초짜리 유튜브 광고에 진지병이 도졌나 보다.
요즘 ‘결혼적령기’라는 말은 사어가 되어감을 체감하고 있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나이지만 싱글인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언젠가 결혼을 하고 싶었던 친구들은 서서히 할 예정이다. 평균수명도 늘어가고, 20대와 30대에 즐겨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겠지. 부모님 세대에는 이 나이에 많이들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었을 텐데, 내 친구들의 일상은 여행, 페스티벌, 사이드 프로젝트 및 취미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고정관념과 달리 결혼을 재촉하거나 압박을 주는 부모님들도 많지 않아 보인다.
다만 결혼과 별개로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느냐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끔찍하게도 불공평하지만 여자는 아이 계획을 인생에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인생 전체의 모습이 달라진다. 아니, 계획이란 것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더욱 슬프게도 평균수명과 달리 임신 성공이 높은 나이대는 늘어나지 않았는데, 즉 이제 막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바로 아이를 갖고 낳는다고 해도 만 35세 이상의 출산, 즉 노산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는지도 천지차이겠지만, 사회적으로도 한창 왕성하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도 많은 나이에 몇 년 간을, 또는 쭈욱 임신과 출산, 육아에 써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뿐 아니라 주변 커플들도 보면 아이를 가질지 말지 하는 결정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 대세.
다시 이케아 광고로 돌아오면 이 커플의 경우 남자 쪽이 아이가 있는 집을 그리고 있다. 광고에서처럼 텅 빈 집의 인테리어를 함께 해나가는 상황이라면 가까운 미래에 아이가 있을지 아닐지에 따라 집의 구조와 가구도 완전히 달라지겠지. 게다가 같이 살 집을 보고 있는 커플이 아직도 아이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지 않았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나 자신이 꼰대같이 느껴졌고 그래서 상상을 그만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