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서 다시 시작한 헝가리어 수업. 그동안 자발적으로 공부할 리는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가끔씩 drops 앱으로 단어만 익히고 있었다. 무서운 건, 하루 5분 정도만 할애하면 되는 앱인데도 며칠 안 하면 무섭도록 모든 걸 다 까먹게 된다. 그래서 계속 조금 배우고 다시 까먹고, 까먹은 것들을 다시 배우고 또다시 까먹는 일의 연속이다. 오십 보 전진을 위한 백 보 후퇴를 하는 기분인데 쩝..
수업은 회화에 중심을 두되 문법을 탄탄하게 밟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진도가 나가는 속도는 아주 느리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데다가 공휴일이 끼고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까지 낀 긴 겨울방학까지 있으니 반복이 생명일 수밖에 없긴 하다.
어느 언어나 그렇듯, 나의 헝가리어 수업 역시 “저는 ㅇㅇ입니다.”로 시작한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저는 ㅇㅇ에 삽니다.”, “저의 직업은 ㅇㅇ입니다.” “저의 직장은 ㅇㅇ입니다.”로 연습하는 문장과 단어가 늘어난다. 최근에는 숫자 연습이 늘어나면서 각자 파트너에게 주소와 우편번호, 핸드폰 번호까지 (!) 묻고, 받아 적고, 모두에게 공유(!!) 해야 한다. ((그나저나 숫자 진짜 골치 아파 죽겠음..))
또 요즘 연습하고 있는 것은 “나의 남자친구/여자친구/남편/아내는... “ 하면서 자신의 파트너를 소개하는 문장들과 ”나는 ㅇㅇ와 ㅇㅇ언어로 말을 합니다. “라는 문장이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수업을 꾸준히 나오는 주요 멤버들 중 파트너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말 헝가리어를 쓰는 파트너가 있는 사람들만 사랑의 힘으로 살아남는 것인가?
규칙은 선생님이 정해진 질문들을 하면 지금까지 배운 단어와 문장 구조를 사용해서 답을 하는 것이다. 몇 달 배웠다고 배운 단어들이 늘어나다 보니 활용을 좀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다. 필요한 단어인데 아직 안 배운 경우는 바로 선생님이 알려주신다.
- 당신 남자친구가 헝가리 사람인가요?
+ 네, 제 남자친구는 헝가리 사람입니다. 데브레첸 출신입니다.
- 그는 독일어를 할 줄 아나요?
+ 네, 그는 조금 할 줄 압니다.
- 일하나요 공부하나요?
+ 제 남자친구는 일을 합니다.
- 어디서 일을 하나요? 뮌헨? 게르메링?
+ 뮌헨 슈바빙에서 일을 합니다.
- 그는 어디에 사나요?
+ 뮌헨 막스포어슈타트에 삽니다.
- 집에서는 어느 언어로 말하나요?
+ 헝가리어와 독일어, 영어로 말을 합니다.
- 그는 독일어를 할 줄 아나요?
+ 그는 독일어를 조금/아주 잘합니다.
대충 이런 포맷으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파트너가 헝가리 사람이고 뮌헨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경우가 가장 단순한 모델이겠다.
나는 파트너가 헝가리인도 아닌 데다가 고향도 헝가리가 아니고 헝가리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 이를 더 설명해야 했고, 집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쓰기에 이에 대한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다른 학생의 여자친구 역시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트란실바니아는 예전에 헝가리였기 때문에 헝가리계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질문이 복잡해지는 경우는 아이가 있는 경우.
아이들과/아들과/딸과 무슨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지, 파트너는 아이들/아들/딸과 무슨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지를 묻고 답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파트너에 대한 문답 연습 과정에서 파트너와 자녀가 있지만 공통의 아이가 아닌 자녀도 있는 경우나 동성의 연인이 있는 경우가 드러난다. 놀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외국어 학원이었다면 공유되었을 정보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 계속 더 배우면 더욱 tmi 넘치는 헝가리어 문답 연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