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바의 핑크빛 로맨스
독일의 5월 한가운데에는 항상 라바바(Rhabarber)라는 핑크빛 한 줄기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영어 명칭인 루바브 또는 루밥이라고 부르는 채소이다. 루밥은 보통 4월부터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며, 5월에 최고의 품질과 풍미를 자랑한다. 라바바는 나에게 집에서 1만 km 떨어진 이 나라에서 보낸 시간, 남편과의 로맨스, 그리고 소소한 재미와 추억을 선사한 핑크색 비밀 일기장이다.
나와 라바바의 역사는 약 9년 전, 남편이 구 남자친구였던 시절 처음 독일을 방문했을 때 시작되었다. 그가 아직 학업을 끝내기 전이라 나는 아헨이라는 대학 도시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 주로 머물렀다. 아헨은 샤를마뉴 대제의 궁정도시라는 명성에 맞는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한 달가량을 머물며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여행은 남편이 나에게 독일이라는 나라와 이곳에서의 생활, 문화 등을 어필하기 위한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숨은 의도가 그러했으므로 그는 내게 당시 독일의 좋은 점만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 고향은 아니지만 몇 년을 지냈던 아헨의 특산물인 프린텐 (Aachener Printen)을 소개해 함께 그 알싸한 향의 생강빵을 나누어 먹었고, 폰트슈트라세에서 저렴하고 양 많은 식사를 하고, 추억이 쌓인 단골 식당과 빵집을 하나씩 방문했다.
하루는 내가 늦잠을 자는 동안 몰래 아침 산책을 다녀온 그가 라바바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원룸 아파트에서 새콤한 한 입, 달콤한 두 입을 나누어먹으며 그는 라바바 바바라(Rhabarberbarbara)’라는 우스꽝스러운 영상을 보여줬다. 일종의 독일어 잰말놀이를 활용한 이야기로 이국적이고 낯선 독일어 r 발음이 잔뜩 들어가 당시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던 나에게는 암호같이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덕분에 기관지를 긁으며 내는 소리의 ‘라바바’라는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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