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동화 속 이야기
어릴 적 읽었던 어떤 유럽 배경의 동화책에는 '아스파라거스'라는 이름의 음식이 등장했다. 그림책에서 대강 본 그 이국적 이름의 기다란 채소는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심어두기엔 충분한 존재감을 뽐냈다. 화려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스테이크도 아닌 것이 왜 고급 식당에 등장하는 의문이었던 그것은 당시 내겐 그저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 낯선 단어로 기억에 남았다. 아스파라거스가 등장했던 동화 이야기의 줄거리는 정작 흔적도 남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그 책 속 주인공들처럼 우아하게 아스파라거스를 나이프로 잘라 포크로 찍어 먹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만은 남았다. 한창 뽐내고 잘난척하기를 좋아할 초등학생 시절이라 언젠가 저 단어를 또 마주하게 된다면 “나 그거 뭔지 알아, 그림 봤어!”라고 말하게 될 순간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독일, 뮌헨에 살고 있는 30대의 내가 있다. 드디어 날이 좀 풀리고 봄이 오려나 싶은 4월에 접어들면 거리 곳곳에서는 딸기와 함께 독일어로 ‘슈파겔(Spargel)’이라 불리는 아스파라거스가 등장한다.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초록색 아스파라거스와는 달리, 독일에서 보통 슈파겔이라 불리는 것은 땅속에서 자라 햇빛을 보지 않아 새하얀 아스파라거스이다. 싹이 땅 위로 나오기 전 흙을 덮거나 차광막을 씌워 빛을 완전히 차단해 엽록소를 만들지 못해 하얗게 자라게 한 것이다. 이 방식의 재배와 수확에는 더 많은 노동력이 들어 초록색 아스파라거스보다 흰 슈파겔이 '고급 식재료'의 이미지를 갖는다고 한다. 슈파겔은 백금이라는 뜻의 das weiße Gold로도 불리니 어린 맘에 왠지 고급스러워 보였던 그 위상이 맞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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