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나도 안 한 듯 했지만
인터그라치온쿠어스를 듣고 나면 보통 많은 학생들이 이어서 오리엔티어룽쿠어스를 듣는다.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필수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내 경우는 필수였는데, 수업료랑 시험 비용도 대주고, 독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도움을 준다는데 아니오 할 이유가 없었다. 매번 독일어 공부 책에 나오는 단어와 문법만 보면서 ‘이것들이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도 질렸고, 이제 기초적인 수준까지는 배웠으니 독일어 인풋 자체를 늘리고 싶기도 했다. 수업에 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독일의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들을 테니 그것들이 다 쌓이고 도움이 되겠지?
오리엔티어룽쿠어스는 같은 학원에서 거의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들었다. B1 시험을 본 뒤 일주일 간의 방학을 갖고 바로 다시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을 못 참아서 나는 이웃 학원을 힐끔거리다가 등록하고야 만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그 덕분에 하루 8시간을 독일어 학원에서 보냈다.)
어학 수업과 다르게 한 선생님이 쭉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본인 스타일대로 수업을 하셨다. 지역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 언어 담당 선생님은 역시 예상대로 역사 부문을 담당하셨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비독일인인 외국인들이었는데, 어느 정도 자란 후 10대 때 독일로 이민을 오신 분들이라 외국인의 시각과 독일인스러운 시각을 고루 전달해 주셨다.
사실 오리엔티어룽쿠어스 시험은 매우 쉽다. 난이도 자체가 쉽다기보다는 몇 백 개의 문제가 있는 문제 은행에서 무작위로 서른 문제를 뽑고, 각 주와 관련된 문제를 세 개 더해 (이것도 물론 문제 은행 안에 이미 있다.) 서른세 개의 문제가 있는데, 시험 통과를 위해서는 이 중 15개를 맞추면 된다.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독일 시민권 신청을 위해서 시험을 보는 것이라면 17개 이상, 즉 절반 이상을 맞춰야 한다고 한다. 공부해두어야 할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주 5일, 매일 네 시간씩 4주 간 공부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는 독일의 문화를 공부한답시고 독일 영화 / 또는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를 보고,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기도 하고, 아우크스부르크의 자랑인 브레히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브레히트 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수업 기간 중에 B1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그때 교실에 있던 모두가 통과했기 때문에 바로 선생님의 단골 맥주집으로 가서 선생님이 쏘는 맥주를 얻어 마시기도 했다.
여러모로 B1라는 시험 통과를 위해 단어와 문법을 공부하고 모의고사를 풀던 어학 수업 때와 다른 분위기였다. 주 5일 하루 네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 건 똑같은데, 오리엔티어룽쿠어스 기간에 급속도로 학원 친구들과 친해졌다. 수업 시간 중에 토론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은 지금 내가 뮌헨으로 이사 온 뒤에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종종 날을 잡아 만나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공부를 한 듯 안 한 듯 싶은 기간이었지만 덕분에 짧은 기간 안에 독일 사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시험 결과는?
이번에도 33개 문항 중 33개, 만점으로 멋진 마무리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