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 유학 없이 독일 취업, 회사 고르기

나 하나 들어갈 곳은 있겠지

by mig

B1 시험을 통과하고, 오리엔티어룽쿠어스도 마친 뒤에는 잠시 한국도 다녀오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오리엔티어룽쿠어스 수업이 끝나자마자 뮌헨으로 이사도 했다. 주 5일 매일 네 시간씩, B1 시험을 본 뒤에는 매일 여덟 시간씩 학원에 가서 앉아 있었으니 나름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휴가를 준 셈이다.

종강 후 오랜만에 학원 친구들을 만났던 날의 영상 일기

B1 수업을 같이 들은 친구들의 계획도 가지가지였다. 대부분은 B2 수업을 들으려고 했는데, 휴식 없이 곧바로 시작하는 사설 학원이나 시민 대학 (VHS) 수업을 신청한 친구도 있고, 나처럼 고향에 넉넉히 다녀오고 조금 쉬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사실 명확한 계획이랄 것이 없어 갈등만 무지하게 하고 있었다. 당시 매일같이 가던 바쁜 학원 생활이 끝나자마자 한국 친구들 여럿이 뮌헨에 놀러 와서 나도 관광객처럼 열심히 놀러 다니고, 독일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러 다니곤 했다. 독일어 공부는 머리에서 지워버렸던, 제대로 놀았던 방학이었다.


독일에서 대학에 진학하려는 친구들은 어차피 C1 수준의 어학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나름의 계획을 짜는 듯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최종 목표가 취업이었는데, 초급에서 초중급 수준이라고 하는 B1를 통과한 뒤에 과연 독일에서 취업을 할 수 있을지가 우리 모두의 질문이었다. 결론은 지금 와서 말하자면 “할 수 있다”이지만, 그때는 독일어 시험 성적이 취업 시 영향을 끼칠지, 그렇다면 B2? C1? 언제까지 독일어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 수업을 듣고 실력을 쌓는 데 의의를 두면 될지, 정말 공식 시험을 봐야 할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갈팡질팡하던 차에 어차피 봐 두었던 어학원들에서 바로 시작하는 B2, C1 과정도 없어 취업 준비와 독일어 공부를 병행해보기로 했다. 말이 병행이지 설렁설렁 방학 모드로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고, 구인 공고들을 뒤지며 뮌헨에는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조사를 하고, 여러 후기들을 찾아 읽으면서 독일에서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아갔다. 남의 떡이 괜히 더 커 보여서 독일에서 유학 생활이라도 했다면 학교 취업 정보실도 있고, 주변 친구들에게 건너 듣는 정보나 학교 수업을 통한 인턴 기회들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늦게라도 어디 대학교에 입학 원서라도 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독일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내려면 C1 수준의 어학 성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다시 원점. 결국 독일어를 공부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에 나는 “시험을 위한 독일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싫었나 보다. 두 달 동안이나마 수업을 들어 보았던 C1 수업은 굉장히 재미있었지만 확실히 학술적인 고급 독일어라는 느낌이 강했다. 토플 생각도 나고 해서 B1 때와 다르게 굉장히 그 시험을 보기 싫다는 생각이 강했다. 괴테든 텔크든 DSH든 TestDaF든 다 보기 싫었다.


그래서 결국은 취업을 먼저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 해 보다가 안 되면 그건 백 프로 독일어 때문일 것이니까 (?) 그럼 그때 독일어를 공부하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대학에 등록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보자. 어차피 일 이 년 독일에 살 거 아니니까, 독일 생활을 느껴보려면 학교든 회사든 이 나라에서 단체 생활을 해 봐야겠다.


이 나라에서, 아니 유럽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온갖 증명서와 학점 등을 비롯한 시스템이 유럽 내에서는 그나마 통일되어 있지만 나는 한국과 중국에서 공부를 했다. 중국은 심지어 아포스티유 협약국도 아니다. 전공과 한국에서의 직장 경력이 모두 패션/의류 업계이고, 제조업에서 일했던 나는 한국에서 일할 때부터 늘 이커머스 산업군으로 옮기고 싶었다. 좋아, 그럼 키워드는 “패션”과 “이커머스”다.

https://youtu.be/TlpFUV_e6xA

이커머스 및 패션 산업군으로 방향을 잡고 참고했던 사이트들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공개 채용 정보를 내놓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그때 그때 필요한 시기에 공고를 낸다. 자체 채용 사이트가 있는 회사가 있고, 링크드인이나 스텝스톤 등 구직 플랫폼에 공고를 올리는 회사가 있다. 다행히 시간적으로 급할 이유는 없으니 최소한 한 달은 시간을 잡고 채용 공고의 추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어떤 회사들이 어떤 공고를 내는지, 여기에서는 어떤 직무들을 뽑는지, 그 회사들은 뮌헨 시내 또는 교외의 어느 곳들에 있는지 등 한국이었다면 당연하게 알고 있었을 구인구직 시작의 landscape를 크게 본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자주 공고가 올라오는 곳은 또 왜 그런지 나름 알아보기도 하고, 관심이 가는 회사들은 보통 공고를 자사 홈페이지에 먼저 올리기 때문에 회사 채용 사이트를 저장해두었다. 이렇게 몇 주 동안 수많은 사이트들을 유랑하고 주위에도 나름 물어보고 간접 경험을 해 본 결과 얻은 깨달음은 이렇다.


1. 어쨌든 독일어로 면접을 보고 일을 할 각오를 해야 한다. 큰 다국적 기업들도 뮌헨 오피스에서는 독일어로 채용 + 근무하는 경우가 아주 아주 많다. 독일 대기업의 경우는 근무하는 외국인들의 독일어가 네이티브 수준인 경우가 매우 흔하다. 회사 언어가 독일어이지만 일부 팀이 영어로 일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비 독일인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이거나 기술적인 면이 더 중요한 업무일 수 있다. 전자는 내가 원하지 않고, 후자는 문과생인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지금 회사에서 보고 느낀 바로는 이 경우에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에 제한이 있다. 영어 쓰는 외국인들의 섬 느낌...


2. 그래도 영어로 일을 하고 싶다면? 독일어 채용 공고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한 경쟁을 예상해야 한다. 가끔 가다 해당 공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는지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허수도 있겠지만 보통 영어로 써진 공고, 영어로 일한다고 하는 공고에는 정말 몇 배 더 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 안 그래도 외국인 많은 뮌헨에서 영어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독일어 공고보다 수는 훨씬 적으니 영어로 일하는 직무라면 일단 다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 걸까.


3. 큰 다국적 회사들의 공고는 뻥인 경우가 많다. 이름만 들으면 그쪽 산업군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글로벌 대기업들은 그냥 항상 같은 공고를 올려둔다. 온갖 구직 플랫폼을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확인하다 보면 이 회사가 정말 이 포지션을 구하는 건지, 몇 주 전에 올린 공고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완전 똑같이 또 올리는지가 보인다. 한 글로벌 기업의 최종 면접까지 갔었는데, 진행 상황이 꽤 실망스러웠다. 채용 공고는 항상 올라와 있어도 내부적으로는 당연히 나름 타임 라인이 있고, 항상 공고를 올려두는 만큼 수천수만 명의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에 서류 접수부터 면접까지 과정이 매우 느리며, 그 과정에서 (특히 사람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독일 기업들에 비해) 갑질을 당한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채용과정 후기가 별 2개 정도인데,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채용 진행 상황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공유되지 않으며 갑자기 내일 면접이라고 통보하는 식인 것이다. 다른 글로벌 대기업에도 지원을 했었는데, 이 경우에는 시스템 에러인 건지 서류 접수를 했음에도 접수 완료 메일이 오지 않았고, 채용 홈페이지에서도 접수가 아직 안 되었다고 뜨는데 접수 페이지로 가면 접수가 되었다고 나오는 상황이 발생했다. 유명 회사이긴 하지만 내 우선순위에서 높은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놓았는데, 이런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문의 폭주를 우려해서인지 HR팀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었다.


4. 비타민 B. 인맥을 뜻하는 독일 은어이다. 이 비타민 B를 통한 취업이 굉장히 많다. 외국인 입장에서 쉽지 않다고 여겨지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비타민 B는 개인적인 친분이 될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했던 인연이나 인턴을 했던 인연 등도 포함이 된다. 독일 유학생들이라면 학교에 다닐 때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뛴다면 본인의 비타민 B를 만들거나 학교 친구들의 비타민 B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5. Initiativbewerbung. 원하는 직무가 공고에 없더라도 그냥 회사에 나라는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이다. 일부 회사들은 채용 사이트에 회사 측에서 올리는 직무 공고 외에도 Initiativbewerbung 메뉴를 따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독일 취업 관련 사이트들을 보면 Initiativbewerbung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팁이 가득하다. 특정 회사에서 꼭 하고 싶은 특정 직무가 있는데 그 공고가 없을 경우에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부지런하게 독일 취업 시장 눈팅을 하면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취업 전 마지막 여행이 되길 바라며 베를린에 여행을 다녀오고, 슬슬 눈팅을 끝내고 실제 지원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 편은 독일어 자기소개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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