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키토에서 먹고 놀고

누가 밤에 안 나간댔어

by m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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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의 추억을 꼽으라면 떠오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니코와 루이스

숙소가 있는 곳은 La Gasca라는 구역으로 조용한 주거 지역이자 대학가이다. 근처에는 유치원도, 동네 약국과 슈퍼마켓도 있었다. 호스텔 직원은 아르헨티나 출신 니코와 베네수엘라 출신 루이스. 니코는 아침마다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하나 물고 나가 덜 뜬 눈을 비비면서 안부 인사를 건넨다. 숙소에 있는 누렁이 프린세사와 검둥이 네크로는 니코를 잘 따른다. 아침 담배를 태운 뒤 니코는 네그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간다. 프린세사는 성격이 제멋대로라 말을 듣지 않아 항상 네그로만 데리고 나간다고.


예기치 않게 오게 된 곳이지만 마치 친구네 집에서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같은 곳에서만 며칠을 머물렀다. 매일 아침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눈을 뜨고, 슬슬 일층으로 내려가 마당에서 프린세사와 네그로와 논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리면, 주방에서 다 함께 따뜻하고 푸짐한 아침을 먹는다. 재량권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이스의 아침 식사는 날이 갈수록 푸짐해졌다. 나중에는 다 함께 장을 봐서 저녁을 같이 요리해먹기도 했다. 정말 친구네 집에 묵는 기분.


베네수엘라 출신 루이스는 처음에 이곳에 손님으로 묵었다. 일주일을 넘게 머물면서 호스텔 일을 조금씩 도와주다가 사장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La Gasca라는 동네도 마음에 들고, 에콰도르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냉큼 승낙했단다. 루이스는 베네수엘라에서 법대를 나와서 변호사로 일을 했었다. 개인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루이스가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하셨지만, 본인은 여행하며 사는 삶이 맞는다며 키토에서 몇 달째 살고 있었다. 호스텔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겸사겸사 영어도 연습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 갔던 해까지만 일을 할 계획이라고 했던 루이스. 연락을 드문드문 계속하는 중인데, 지금은 나와 가까워진 유럽의 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


뒤뚱거리며 달리는 버스

관광할 거리가 많은 구시가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꽤 가야 해서, 우리는 매일 출근하듯 같은 버스를 탔다. 경사가 많고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을 덩치가 큰 버스들이 흔들흔들거리며 다니는 것이 무서우면서 참 재미있다. 노선도나 버스 번호는 없다. 버스 회사의 이름이나 종착지를 보고 타면 된다. 요금은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차장에게 낸다. 다른 승객과 달리 옷을 꽤 빼입은 차장은 주기적으로 버스에서 내려서 무언가를 적기도 한다. 버스에 상주하고 있는 '차장'이라는 존재를 만난 것이 처음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파랗고 색다른 키토의 하늘과 태양

키토는 해발 2850m 정도 되는 도시이다. 고도가 높은 덕분인지 구름이 낮게 깔린 듯이 보인다. 버스를 타고 길을 달릴 때면 화산이 양옆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하늘 정말 너무 예쁘다!"라는 말을 숨 쉬듯이 내뱉으며 다녔다. 그리고 그 하늘의 중심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있다.


키토의 햇살은 밝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따갑다고 하기에는 환하다.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 왜 태양신을 모셨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역시 백문이불여일견. 다만 높은 고도 때문에 함께 갔던 친구는 고산병 증세를 겪었다. 쉬엄쉬엄 하는 여행이었던 덕분에 이미 친구가 된 스탭들과 숙소에서 푹 쉬었고, 약을 사서 먹으니 조금 괜찮아졌다.


친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케이블카인 텔레페리코 (TeleferiQo)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 해발 4100m에서 하이킹을 하고 왔다. 가는 길에 TELEFERIQO라고 써진 봉고차를 운전하는 아저씨가 혹시 케이블카를 타러 가냐며 태워주겠다고 말을 걸었다. 혼자였기 때문에 경계의 눈빛을 쏘고 괜찮다고 했더니, 본인은 텔레페리코와 키토 시내를 오가는 셔틀을 운전하는데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니 그냥 타란다. 정황 상 맞는 말인 것 같아 그 차를 타고 덕분에 승강장까지 편히 갔다. 게다가 이 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가고 싶지 않으면 텔레페리코 근처에 있는 학교의 스쿨버스를 타면 공짜로 올라올 수 있다는 팁까지(?) 주셨다. 올라가 보니 혼자 온 여자 행자들이 꽤 있어,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이야기도 나누며 걸었다. 기분 탓인지, 평소 마시던 공기보다 해발 4100m의 공기가 더 깨끗한 것 같았다.


세상의 중심 mitad del mundo 그리고 적도 박물관 Museo Inti Ñan

나라 이름부터 '적도'를 뜻하는 에콰도르. 그중에서도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mitad del mundo에서 지도 앱을 켜 나의 현재 위치를 보니 얼떨떨하고 신기했다. 선사유적지와 민속박물관 같은 곳을 견학하고, 과학 박물관 같은 곳에서도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Mitad del Mundo는 GPS 발달 이전 학자들이 추정했던 적도의 위치인 반면, 군사 GPS로 측정한 실제 적도는 Museo Inti Ñan에 있다. 그곳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먼저 배운 뒤, 흥미로운 적도 체험을 할 수 있다. 적도에서 근육의 힘이 약해지는 체험을 하고, 그곳에서 달걀을 똑바로 세우면 증명서도 발급해준다. (나는 실패했다.) "Latitude 00° 00' 00”"이라고 표시된 곳에서는 차례로 사진을 찍고, 그 선을 넘나들며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한다. 북반구 쪽에 있는 세면대와 남반구 쪽의 세면대에 물을 가득 채웠다가 뺄 때 생기는 소용돌이 모양이 반대인 것도 재미있었다. 또, 그곳에 있는 빨간 선을 똑바로 따라 것이 힘들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원리는 잊어버렸다.


키토의 길거리 음식

양념 메추리알 한 봉지, 실한 딸기 한 봉지, 쨍한 핫핑크색의 아이스크림. 키토의 길을 걷다 출출해질 때마다 사 먹었던 것들이다. 첫날 아침에는 길을 가다가 한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고 주섬주섬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보온병 같은 것을 바닥에 놓더니 그 자리에서 세비체를 팔기 시작한다. 개업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호기심에 1달러짜리 세비체를 먹었다. 생각보다 고기와 야채도 풍부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허브의 향이 난다. 아낌없이 쫙쫙 라임즙도 넣어 주시고, 귀엽게 토핑으로 팝콘도 올려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 세비체 하나에 1달러는 길거리 음식치고 비싼 것이었다.


1달러는 키토에서 아침 식사 세트를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점심 식사는 2달러 정도면 배불리 먹는다. 해산물이 메인인 코스는 3달러 정도. 에콰도르의 '오늘의 메뉴' 개념으로 쓰이는 단어인 almuerzo (다른 나라에서는 그냥 '점심'이라는 뜻이다.)는 보통 수프, 메인, 디저트를 두세 개 중에 고를 수 있는데, 우리는 항상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켜 다양하게 먹었다. 에콰도르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chochos(콩의 한 종류)가 들어간 세비체도 먹었다. 스페인에서는 chochos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한 스페인 친구에게 "초초스가 들어간 세비체를 먹었어!"라고 했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소세지와 감자튀김에 소스를 뿌려 먹는 살치빠빠(Salchipapas)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에콰도르만의 음식은 아니지만, 키토에서 먹은 것이 가장 맛있었다. 뭐든 첫 경험이 가장 강렬하기 마련이지. 새파란 하늘과 하얗고 두꺼운 구름, 그와 대비되는 노랗고 빨간 살치빠빠. 키토에서 찍은 사진들 중 좋아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키토의 잠들지 않는 밤

여자 둘이서 남미 여행을 간다고 설레발은 있는 대로 쳤다. 조심, 또 조심을 서로에게 되뇌며, 늦은 오후부터는 밖에 나가지도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키토에서 우리는 매일 밤 밖으로 나가서 야식도 먹고, 술집도 가고, 클럽도 다녔다. 물론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비교적 안전한 동네이기도 했고, 늦은 시간에는 항상 택시를 타고 조심하며 다녔다. 시간이 될 때는 스탭 루이스나 옆방에 장기투숙 중이던 마틴과 함께 나가기도 했다.


Foch라고 부르는 Plaza Foch라는 곳이 우리가 매일같이 놀러 나간 곳으로, 이태원이나 홍대의 밤이 떠오르는 거리다. 오죽하면 매일 방문하는 우리를 입구 앞의 보안요원이 알아볼 정도였다. 저녁을 먹은 뒤 숙소에서 1차로 음악을 틀고, 에콰도르에서 가장 흔하다는 필스너 맥주에 럼을 마시며 흥을 돋운 뒤 다 함께 Foch로 나간 날도 있다. 그곳의 바나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었다. 에콰도르의 축구팀에서 뛰고 있다는 페루 출신 선수도 만나고, 여자 친구와 함께 진정한 라틴댄스를 보여주겠다며 멋진 춤 공연을 해준 아이, 키토 출신이지만 춤을 출 줄 모른다며 목석같이 앉아있던 아이. 야식으로 먹을 꼬치를 주문하자 "어떻게 우리나라 말을 할 줄 아니?"라며 한국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던 아주머니. 이곳에서 만나는 모두가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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