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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y 30. 2017

3. 인터넷 서핑 말고 진짜 서핑

서핑이라 쓰고 짠물 흡입이라 읽는다

3-1. 나의 첫 서핑은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시작됐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오늘부로 그 말은 취소다. 그건 서핑이 아니라 물장난이었는지도... 감히 포르투갈의 아무리 큰 파도도 발리의 작은 파도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창구 비치(Changgu beach) 앞에 섰다. 



3-2. 문득 어제 수영장 안에서 만났던 개미를 떠올렸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퍼덕거리던 무수한 발들, 내 작은 손짓에 출렁이던 온몸. 딱 내가 그 꼴이었다. 아니, 파도 위에 나는 그 개미 한 마리 만도 못했다. 꼬르르륵.


3-3. 현지 친구 Aprilia의 소개로 서핑 강사 Lah de를 만났다. 1:1 개인 강습을 받기로 했다. 가격은 쉿. 기회가 된다면 소개하여 주겠다. 숏 보드를 옆구리에 낀 그는 1.8미터 정도 되는 파란색 소프트 롱보드를 내게 안겨주고, "팔로 미"를 외치며 해변가를 걷기 시작했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내 몸에 모든 구멍을 통해 소금물이 콸콸콸콸 쏟아져 들어올 거라는 사실을.


3-4. 가볍게 몸을 풀고, 자세를 다시 점검하고, 바다 위에서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동선을 맞추는 데 30분이 흘렀다. 이때만 해도 이 30분이 아까워 속으로 '얼른 들어가지' 꿍시렁 꿍시렁 거렸다. 하지만 나중엔 이 30분이 그저 소중해졌다.


3-5. 서핑의 모든 것은 패들링, 즉 노젓기라는 말과 함께 본격적으로 서핑이 시작되었다. 서핑보드 양 옆으로 손을 젓는데, 파도가 치는 반대방향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꽤 많은 힘이 필요하다. 팔 근력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 것 같다. 근육 돼지인 나조차 오기 전에 웨이트하고 오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였으니까. 바다에선 같은 위치에 있기 위해서 끊임없이 패들링을 해야 한다. 무엇 하나 그저 주어지는 건 없다. 파도를 넘기 위해선 몸을 더 일으켜 세워야 하고, 나아가기 위해선 더 많은 패들링이 필요하다.


3-6. 약 1년 만에 다시 만난 바다, 한참을 패들링 해 나가자 무엇이 나를 서핑으로 이끌었는지 깨달았다. 파도의 이편과 저편은 스틱스 강 이편과 저편만큼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파도를 넘어서야만 파도 뒤를 따라가는 무지개를 볼 수 있다. 마치 파도의 갈기 같이 일렁이는 무지개를 보고 싶다면 당신도 파도를 넘어 이쪽으로 와야 한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가에선 절대 볼 수 없다.


3-7. 서핑은 좌우 앞뒤 모든 방향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운동이다. 굴러가는 둥근 공 위에 서서 평평하지 않은 땅 위를 굴러간다고 생각해보라. 심지어 바다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할 수조차 없다. 보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만, 하는 건 더 어렵다.


3-8. 손가락만 까딱이는 인터넷 검색에 감히 서핑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나. 소금물에 절여져 나오며 나는 절대 앞으로 인터넷 서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 결심했다. 이 엄청난 수고로움과 무수한 땀방울이 모여있는 이 운동을 어떻게 다른 단어에 쉽게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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