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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Sep 05. 2017

전은 여자가 부치고 절은 남자가 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

엄마 말대로 너는 꼭 한 번을 쉽게 넘어간 적이 없었다.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일들. 너는 그런 것들을 쉬이 넘기지 못했다. 엄마는 한번 사주를 보고 오더니, 너를 보고 모난 돌이라고 했다. 세상이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에는, 수십여 년 간 일하는 엄마로 살아온 현실이 녹아있어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엄마가 동창들과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끼게 되었다. 너는 그런 자리를 좋아했다. 너와 다른 세대의 여자들에겐, 그들의 세계가 있었고, 그 얘기는 답답하지만 재밌기도 했다. 갱년기로 시작된 대화 주제는 카페 밖을 오가는 손을 꼭 잡은 커플들로 옮겨갔다. 예전엔 저러면 큰일 났다며 엄마들은 꺄르르 거렸다. 그때, 아들만 셋이라는 김 씨 이모가 입을 열었다.

- 어휴, 나는 요새 남자들이 조금 불쌍해. 여자들이 기가 너무 세 가지고, 기도 못 펴고 살고. 해야 할 건 많은데 누리는 건 적고.

그 말에 다들 태양열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의 고개도 그들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막내 남인이를 떠올리는 모양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 뭐가 불쌍해? 나는 하나도 안 불쌍한데?

그들의 끄덕임을 멈추게 한 건, 한 달 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한 씨 이모였다.

- 솔직히 우리가 너무 지고 살았지. 남자들이 우리 몫까지 누리고 산 거 아니야? 나는 내 딸이 자기 몫만큼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어.

너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그런 너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가만히 있으라는 표시였다. 너는 오른 눈썹을 한번 움찔했다. 엄마는 대화 주제를 좀 돌려보려는 듯 커피잔은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  에이 그런 말이 아니지. 여형이 얘 봐. 어렸을 때부터 설거지를 시키면 꼭, 고개를 홱 돌려가지고 동생 보고, 네가 해, 했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기가 세도 엄청 셌어.

너는 너에게 쏟아지는 12개의 눈빛을 느끼곤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엄마가 제가 기가 세다고 생각하는 데엔 이유가 있어요. 나는 꼭 한마디씩 덧붙이니까.

*

추석 전 날이면 으레 엄마와 너는 큰 집에 가 전을 부쳤다. 재작년인가, 작년까지인가. 언니도 함께였는데 언니가 취직한 이후엔 너와 엄마, 둘 뿐이다. 큰엄마가 생선을 손질하는 동안, 너와 엄마는 바닥에 앉아 계란을 푼다.

- 왜 남인인 안 해?

민족의 대명절에 왜 여자들만 음식 준비를 하는 거냐는 질문을 너는 매년 두 번씩 한다. 그 질문 지겹지도 않냐고 어른들은 픽 웃어버리고 말지만 너는 그 질문을 빠트리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라는 걸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현실에선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아도 넌 해야만 한다. 그래야 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 어차피 있어봤자 할지도 모르잖아
- 엄만 태어날 때부터 전 부치는 스킬 장착하고 태어났어? 걔도 마찬가지야. 안 하니까 못하는 거지. 그건 나랑 언니도 마찬가지고.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신문지 오른쪽 구탱이를 깔고 앉은 엄마가 생선의 물기를 빼며 재료를 손질하는 동안 너는 15개 정도되는 계란을 탁탁 탁탁 깨 휘휘 젓는다. 이제는 능수능란한 손놀림에 계란 물에 실이 없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노오란 계란 물 위에 거품이 끼면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한쪽 차판에 부침가루를 깔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이제 엄마가 준비해놓은 버섯전의 고기 살에 부침가루를 톡톡 바르고, 계란 물에 퐁당퐁당 빠뜨린다. 버섯전은 비교적 부치기 쉽다. 동그란 표고버섯의 폭 파진 부분에 여러 야채와 함께 다진 돼지고기를 꾹꾹 눌러 넣어 부침가루 계란 물을 묻혀 하나하나 구워내기만 하면 된다. 퍼즐 맞추기 같은 생선전보다야 훨씬 간단한 작업이라 시작이 수월하다. 다음은 양 면에 뭉치지 않게 부침가루를 묻힌 생선을 엄마의 손놀림에 맞춰 계란 물에 넣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엄마가 하나의 전으로 만들기 쉽도록, 다양한 크기를 고루 준비해놓아야 하는 것과 타이밍을 맞추는데 실패해 생선 살이 계란 물에 지나치게 오래 담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는 내가 전이 먹고 싶은 지 알고 막 부친 생선전을 조각 내 내민다. 허옇게 올라오는 김에서 고소한 향이 난다. 탄력이 붙은 엄마는 점점 손이 날래진다. 계란 물에 들어가는 소고기도 점점 많아진다.

매년 전 부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이제는 한 시간이면 모든 게 다 끝나고도 남는다. 기름종이가 깔린 바구니를 노오란 전들이 가득 채웠다. 전이 담긴 바구니들을 보면, 마음이 풍족하다가도, 또 그 전을 올린 제사상에 제일 처음 절을 하는 사람이 남자인 걸 보고 너는 한마디 말을 한다.

- 왜 전은 여자가 부치고, 절은 남자가 해?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부터 넌 아빠와 남인이 사이에 껴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네 번, 남자는 두 번 절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너도 두 번 절을 한다. 그런 너를 보고 친척들은 혀를 찼다. 오던 복도 나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설거지만 해도 그렇다. 다섯 가족이 모여 밥 한 끼를 먹으면, 그릇이 한가득이다. 그러면 엄마는 두 딸을 보며, 설거지해라, 하는데 군말 없이 설거지를 하다가 어느 순간 화가 팍 오를 때가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또 설거지해라, 말하면 너는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남인이에게 한마디 한다.

- 야 네가 해

그러면 엄마는 인상을 쓰면서 동생한데 미룬다고 너를 혼내는데, 너는 그런 엄마에게 맞서 목청을 높인다.

- 미루긴 뭘 미뤄? 쟤가 한 적이 언제 있다고?

몇 마디 주고 받다 마지못해 눈칫밥 먹은 동생이 자리에 일어나 싱크대로 향한다. 엄마는 그런 동생을 보며 왜 네가 설거지를 하냐며, 앉아있으라고 손짓하곤, 너를 한번 흘깃 쳐다보고 고무장갑을 낀다. 너는 그런 엄마를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쉰다.

- 됐어. 엄마가 할 거면 내가 해.

*
너는 궁금한게 많았다. 한자공부를 할 때 왜 나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자어엔 꼭 계집녀가 들어가는 지 물었다. 왜 택시 아저씨들이 첫 손님으로 여자를 태우면 그날 하루 장사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지, 왜 뱃사람들이 여자가 타면 배가 가라앉는다고 느끼는 지, 세상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크면서 너는 대답을 할 수 없는 거라고 확신했다.

*
- 그런 한마디 때문에 엄마는 제가 기가 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네 말에 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그런 너를 빤히 쳐다본다.

- 그런데 이미 기  쎈 여자로 치부되니까 그렇게 살려고요. 나라도 이렇게 말해야지. 안 그럼 누가 말해요? 난 엄마랑 싸우고 싶지도 않고 여기 있는 이모들이랑 싸우고 싶지도 않아요. 세상에 존재하는 여자들이랑 싸울 문제가 아니니까. 우리끼린 싸울 필요도 없어요. 난 그냥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살고 싶을 뿐이라고요.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세상은 너무 여자에게 기울어져 있어서, 남자는 아무 말 안 해도 득을 봐요. 세계에서 백인이 아무 말 안해도 득을 보는 것처럼. 그런데 여자는 적어도 공평하게 살려면 말을 해야 해요. 말을 안 하면 계속 바닥일 뿐이니까.

*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너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것처럼 침묵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엄마는 그런 너의 고집을 잘 알고 있다. 너는 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굽히는 법이 없다. 결국 입을 먼저 여는 건 엄마다.

- 꼭 그렇게 말해야  하니?
- 뭘?

엄마는 운전대를 꽉 잡는다.

- 엄마, 내가 거기서 또 말 한마디 해서 기분 나빠?

빨간불, 차가 멈춰 서자 엄마는 행여나 누가 우리 얘기를 들을까 밖을 한번 쳐다보곤 창문을 올린다.

-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 옳다고 생각해.

엄마는 그제야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연다.

- 근데 그럴수록 네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사는 게, 여자가 그렇게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너는 그런 엄마를 지그시 쳐다본다. 그리고 웃는다.

- 엄마, 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이러는 거 아니야. 행복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때, 신호등 불빛이 바뀐다. 엄마는 다시 앞을 쳐다보고, 너도 앞을 쳐다본다. 아직도 집까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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