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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28. 2017

어디서부터 그려야할까

드로잉 수업 2교시

성수에서 파고남 프로젝트 마지막 행사 준비를 끝내놓고, 부리나케 홍대로 달려왔다. 날이 참 추웠는데 등에선 땀이 났다.


에이 네가 준비 다 해놓고 왜 가, 가지마
힌번쯤 빠져도 되잖아


드로잉 수업을 가겠다는 나를 여러 사람이 말렸다. 준비는 다 해놓고 정작 즐기지 못하는 게 짠해서, 성수에서 홍대까지 그 먼 거리를 언제 갔다 다시 오냐는 말에 마음이 보잘 것 없이 흔들렸다. 가지 말까. 언제나 결심이라는 건 꽃처럼 가까스로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린다.


이틀 전 친구에게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일주일에  고작 두시간이야.
그 두시간을 나를 위해 보내지도 못하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2017년엔 고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드로잉 수업을 가겠다고 짐을 챙겨 나왔다.


오셨어요?


미닫이문을 열자 선생님이 사람 좋은 눈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오기 잘했다는 생각과 이게 뭐라고 여기까지 왔나 싶은 생각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늘은 그림의 시작에 대해 배워볼게요. 저도 그림 그린 지가 지금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처음 선을 그을 때 제일 두려워요.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시작은 되돌리지 못하거든요."


어디까지 그릴 수 있는지, 얼마나 크게 혹은 얼마나 작게 그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 많은 게 시작 선 하나로 정해진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의 모든 시작들을 떠올렸다.. 돌잡이에서 멋모르고 집어든 연필처럼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 사라져가는 자연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했던 영상, 혼란스러운 삶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시작한 글. 시작이 가져올 변화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때가 온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럴 때 여러분의 눈으로 가장 수평인 곳을 찾아보세요.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려보는 거에요 그 자체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릴 수 있으면 더 위에 있는 피사체나 더 아래에 있는 피사체들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어요."



어디가 나의 눈높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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