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이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만났던 직장동료이다. 그녀는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대학도 다닌 경험이 있어 한국어가 상당히 유창한 파리지엔이다. 3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그녀는 우리 회사에 3개월간 CDD 기간제 계약 사원으로 잠시 일하게 되었다.
한국어도 잘 통하고 우선 우리나라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그런 그녀와 나는 서로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고 우리는 직장동료를 떠나서, 밖에서 따로 만나 식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비빔밥을 무척 좋아하는 그녀와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녀가 한국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케이팝과 한국 아이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때 처음 접한 케이팝은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프랑스어 교사인 엄마와 그녀의 언니까지도 케이팝에 빠져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언니와 함께 거울 앞에서 걸그룹 춤도 연습했었다는 말에 우리나라 케이팝의 인기를 새삼 실감했다.
한국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두 번 정도 사귀어 봤다고 했다.
첫 번째 남자 친구는 불어를 잘 못해서 언어의 장벽으로 오래 못 갔고, 두 번째 남자 친구와는 그래도 꽤 사귀었는데 이별의 원인은 바로 남자 친구의 '화장’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에 살아봤기 때문에 한국에서 젊은 남자들이 비비크림 바르는 것에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들이 피부미용을 위해서 가벼운 스킨케어 제품을 바르거나 저녁에 마스크 팩을 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남자 친구의 과한? 화장은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비비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는 것은 얼굴의 어떤 결점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어느 날 핑크빛 틴트까지 엷게 바르고 나타난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보며 올랄라! 이건 아니지... 했단다.
그녀의 말에 네가 좋아하는 케이팝 남자 아이돌이나 네가 봤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도 비비크림은 물론 입술도 바르고 풀 메이크업한다는 내 말에 엘로이는 그건 그들의 직업의 특성상 메이크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 생각하므로 이해되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 여자들은 TV 속 ‘우상'이 아닌 자기의 남자 친구가 화장하는 것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모든 프랑스 여자가 자신과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남자 친구나 남편이 화장하는 것을 반기는 여자는 많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기는...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도 프랑스에 살면서 느꼈던 것은 프랑스에서는 남자들이 화장하는 것에 의외로 보수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티스트들이나 유명 인플루언서 등 직업상의 이유로 하는 남자들인 경우이고, 일반적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화장한 남성은 보기 흔한 모습은 아니다. (사실 여자들조차도 화장을 안 하는 사람이 많다)
프랑스 남자들이 화장이나 외모관리 등에 신경을 많이 쓸 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다들 수수한 편이다.
엘로이 말처럼 일이나 직업과 관련해 피부관리와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들 외에는 화장하는 남자는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대체로 유럽인을 포함해서 서양인들 특히 남자들은 수염이 많다.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인들에 비해 얼굴에 수염이 있는 범위도 넓고 숱도 상당히 많다. 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아침마다 길게 자란 수염을 면도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턱수염에 구엣나루가 있는 얼굴에 비비크림과 틴트라니... 어울리지 않기는 하다.
남자가 화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성별 정체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아직 강한 그런 프랑스에서 몇 년 전부터 한국 남자들이 화장하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아마도 케이팝의 인기와 BTS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우리나라 미소년들이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은 물론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추어 이들의 메이크업이나 스타일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남성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를 하면서 특히 화장한 남자 아이돌 가수들은 남성 화장품 대중화에 일조를 하여 이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전 세계로 수출하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명품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을 다투어 남성 전용 화장품을 출시를 하고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 그램 등 SNS을 통해 화장하는 남자 인플루언서들이 수많은 팔로워를 이끌며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화장에 보수적이었던 이들에게도 변화가 온 것이다.
자신의 피부 결점을 보완하고, 외모를 가꾸게 되면서 얻게 되는 자신감은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사회적 불평등과 젠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메이크업'은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각자 개인의 취향의 차이라고 인정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년간 코스메틱 관련 일을 해왔던 나에게는 남자의 메이크업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남자 친구의 비비크림은 괜찮고 틴트는 용납이 안된다는 엘로이의 생각은 어쩌면 그녀의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다. 남자들도 개인에 따라 과하게 화장한 여자들을 거북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화장'이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이상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선택권은 남성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화장으로 하는 외모관리가 곧 '자기 관리'의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화장을 함으로써 자신의 달라진 외모에 자존감이 올라가고 당당해지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면 남녀 성별 경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의 남자들의 메이크업에 관한 '개인적 취향'은 내추럴, 자연스러움이다.
오늘 당장 내 남편이 눈썹을 그리고 비비크림을 바르고 나에게 다가온다면?
수염도 안 깎은 부스스한 모습보다는 그의 달라진 외모에 마음이 설렐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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