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지만, 쓰고 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항상 다짐을 한다.
내일은 좀 더 많이 써야지. 정말 딱 집중해서 충분히 쓰고 좀 쉬어야겠다. 밀렸던 독서도 하고, 다음에 쓸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고, 지저분한 집도 좀 치워야지.
그렇게 매일 밤 다짐을 한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만큼 쓰지 못한다.
그래도 하루에 정해둔 글 쓰는 시간이 지나면 깔끔하게 포기한다. 글 쓰는 시간 외에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집안일, 아이들 픽업, 또 다른 업무 처리 등등. 글만 쓰고 살기엔 삶이 너무 바쁘다.
글쓰기도 늘 집중할 수는 없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마저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또 고치고 싶은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문득 생각난다. '아, 그 부분은 이렇게 쓰는 게 나았을 텐데.'
어쩌면 나는 쓰는 시간 외에도 계속 쓰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시간조차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비효율적인 시간들을 견뎌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 이런 것들.
오랜 시간 샤워를 하고, 긴 머리를 감고 말리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그 시간에도 나는 다음 이야기를 구상한다. 글을 쓸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물줄기에 씻겨 내려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샤워를 급하게 마친다.
운동을 하러 나가려고 준비하는 시간과 왔다 갔다 걸리는 시간들도 그렇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며 오늘 쓴 문장이 괜찮았는지 되새긴다. 헬스장까지 가는 길에는 다음의 문장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고쳐 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달려본다.
글을 쓰다가 잠시 딴짓을 하면서 어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SNS를 스크롤하다가도, 영상을 보다가도 문득 '이 장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건 딴짓이 아니라 취재라며 위안을 삼는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공부를 하러 왔는지 잠시 멍하니 관찰하고 있는 시간들. 누군가의 옷차림과 표정, 책장을 넘기면서 머릿속엔 딴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 하나하나가 전부 글감이 된다.
그중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일이 있다. 바로 내 자식들을 돌보는 일. 아이들과 함께하며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피곤함, 귀여움, 미안함, 행복함, 사랑, 후회, 막막함, 먹먹함, 고마움, 든든함, 뿌듯함, 감격. 아이가 "엄마, 사랑해"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벅찬 마음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전부 언젠가 쓸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글을 쓰는 시간보다 쓰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
하루 중 온전히 글만 쓰는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엄마로, 아내로, 사업가로,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이 비효율적인 시간들이 전부 쓰는 시간에 포함되는 것만 같다.
매일 써야 한다는, 다른 것들을 하는 시간조차도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이어야 한다는 그런 강박감. 생산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마음.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힘들다.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싶을 때도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거나, 멍 때리고 싶을 때도 있다. 글과 상관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늘 깨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세상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감정에 솔직해지고, 순간순간을 기록하려는 마음으로 산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사물이나 일상의 장면 하나하나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건 꽤 낭만적이다. 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지는 순간이고, 흘러가 버릴 뻔한 감정들이 의미를 얻는 순간이다.
작가는 ‘ 24시간 영업 중’이라는 간판을 걸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글이 되고, 느끼는 모든 감정이 문장이 된다. 비효율적이고 강박적이지만, 이게 나의 글쓰기다. 이게 나의 삶이다. 오늘도 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잠든다.
내일은 진짜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