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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lochen Dec 08. 2023

내가 독일형님과 쌩까는 이유 2

이제 나도 널 남 보듯 본다.

재작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남편에게 말했다.


" 나는 너네 형 집에 가는 게 불편해.

미샤엘라도 불편하고, 미샤엘라 가족들도 차가워.

그리고 내 아이들도 그 집 불편하데. 그러니 너만이라도

부모님과 형 집이 가서 식사하고 오지 그래? 괜찮지?"


남편은 말했다.

"내 가족이 여기 있는데 내가 거길 왜 가? 싫어. 나도 안 가. 우리끼리 저녁식사하거나,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우리와 같이 식사하실지, 형네 집으로 가실 건지 여쭤보자. 이건 괜찮아?"


감동이었다.

 가족!!


사실 한국의 며느리 10년 넘게 하는 동안

난 늘 내  감정을 참고 숨겼다. 시부모와의  혹은 그 주변 가족관계에서 속상해도 참고, 화 나도 참고, 상대방이 무례해도 하나만 참으면

넘어가지니 참고, 내 편이어야 할 사람이 내 편 안 들어줘서 참고, 내가 예민한 거라고 해서 참았다.

그런 오랜 시간 지나고 나니 내가 행복하지 않았고,

누군가가 나의  감정을 희생하길 바라는 게 싫었다.


그래. 꽤 지켜봤고, 저 여자는 저런 여자고 난 나대로 방법을

찾았다. 불편하면 안 만나기.


다행히 그쪽도 게스트 수가 너무 많아서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는 힘들다고 말해줘서 좋았다.

남편과 같이 1층 내려가서 시부모님께 그 여자에 대한 내 마음이 어떤지  조금 말하자마자,

시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해주셨다.


"미희! 네 마음 내가 너무 잘 알아. 불편하면 당연히 그 집 가지 말아야지. 미샤엘라와 그 집 식구들은 그렇게 차갑고 좀 불편하게 하지?? 그럼 우리끼리 파티하자. 사실 나도 미샤엘라 보는 게 편치 않은데, 어떡하니. 내 아들이 선택한 여자라 나는 봐야 해. 하지만 너는 그럴 필요 없지!"


역시 우리 시어머니 최고다!!

눈물도 날 뻔했다.

우리 엄마도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이해해 준 적 없고, 맨날 참으라고만 했는데, 독일 시어머니는 달랐다.

이래서 내가 이분을 사랑을 안 할 수가 없다!


어쨌든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와 사석에서 우연히 만날 때 그녀를 쌩 깔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아는 사이이고, 많이 만났었고, 가족들이 얽혀있는데

아이 둘 키우는 성인으로서 다른 성인을 모르는 척한다는 게 얼마나 유아적인 발상인가?


그런데 마트에서 쌩 까임을 당하고 나서는

나도 똑같이 해줘야겠다고 생각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마트에서도 참 자주 본다.

그녀가 혼자일 때 나는  철저히 그녀를 쌩 까고,

그녀가 아이들과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만 인사하고,

그녀가 남편과 다 같이 있을 때는 남편과 아이들하고만

말했다. 이젠 내 남편도 그녀에 인사도 안 하고, 대화도 안 한다.



내가 처음 이 온 가족들과 레스토랑에 갔었을 때가 기억난다.

나는 독일어도 못하고, 남편은 계속 통역해 주고, 내 아이들도 형의 아이들과 대화도 잘 안되고, 모든 게 참 어색했는데, 그 와중에도 철저히 나를 무시하던 그녀의 표정이 기억난다. 거의 2년여간을 그래왔다.

(남편의 친구들은 너무나 친절했고, 나를 위해 영어로 대화하고 놀았지만,  이 가족들과 있으면 독일어 때문에  난 너무 작아졌다. 내 아이들도..그나마 하이코 형은 영어로 도움필요 시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해서 고마웠다.)


이번에도 시아버지가 레스토랑으로 또 온 가족을 초대해 식사하는데, 이제 내  아이들도 독일어 잘해서 대화도 잘 되고, 나도 어느 정도 시부모님과 티키타카가 가 되니까 마음도 편하고 즐겁게 식사가 되었다. 그리고 디저트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그녀를 봤다. 철저히 무시당하던 그녀는 식탁 맨 구석에 혼자 앉아 딸아이 색칠놀이를 하고 있더라. 풋,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 집 아이들은 나만 보면 내 옆에 앉거나, 내 딸아이 옆에 앉으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내 주변이 있었음.)


재밌는 대가족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긴 하지만

다 큰 성인의 행동을 누가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선택이니 존중해 드려야지.


저번에 우연히 남편에게 물었다.

"니 형은 따뜻한 사람인데, 왜 미샤엘라랑 사랑하게 되었을 까? 이쁜 것도 아니고, 마음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뭔가, 뭔가 엄청난 매력이 있나?? 진짜 궁금하더라고~"


남편 왈

"그 질문은 우리 엄마도 여러 번 했지. ㅎㅎ 누가 알겠어?

그리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 난 몰라!"



: 12월의 크리스마스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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