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

[Day 1-1] 파로(Paro) 공항

by 시에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행복’에 대한 거품은 가라앉았다. ‘완벽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정도의 판단력은 있으니까.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는 늘 혼란이 있었다. 부탄(Bhutan)도 평화롭기만 한 나라는 아니다. ‘행복지수’를 믿을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부터 제도적인 부분, 최근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여행이 결국 이미지를 파는 것이라 한다면 포장이 없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행복’을 입에 올릴 만한 몇 가지 이유는 알 수 있지 않을까.



방콕에서 부탄까지의 직항이 매진돼서 인도를 경유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30분간 멈춰 선다고 한다. 어딘가 시골스러운 데가 있네. 새벽 4시 비행기라 잠에 취해서 가는지 서는지도 모른 채 몇 시간을 날았다. 활주로가 짧기로 유명한 파로(Paro)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가 착륙 직전에 협곡 사이로 날기 때문에 아찔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데 과연 어떨까?


좌석이 복도 쪽이라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갑자기 기내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서 딱 멈췄다고 했다. 사람들은 파일럿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며 밝은 표정으로 짐을 챙긴다. 바깥으로 나오자 눈 앞에 국왕 내외의 사진이 걸린 공항 건물이 보였다. 걸어서 바로 들어간단다.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좋은데? 두 발을 땅에 디뎠으니,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긴장이 된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NICE TO MEET YOU”. 전통의상을 입고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의 이름은 도마(가이드), 남걀(운전기사)이다. 도마는 품에서 반질반질한 스카프를 꺼내더니 우리의 목에 걸어주며 웃는다. 전통적인 환영 방식이라는데, 하와이의 꽃목걸이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만나는 한국 손님이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함께 할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말투에서는 인도식 발음이 묻어난다. 미국식 발음에도 애를 먹는 내가 인도식 발음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을까. 차마 천천히 이야기해 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도마 또한 콩글리쉬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어쨌거나 만나서 반가웠으니 이제 그만 출발하잔다. 도마와 남걀이 차 문을 열어주었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상하고 황송하기만 했다. 여행 내내 빠짐없이 문을 잡아주었지만, 이것만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도마는 공항과 도시의 전경을 보여주겠다며 차를 세웠다. 과거에 다른 나라와 많은 물자가 오고 갔던 부탄 서부의 옛 수도, 현재는 국제공항이 있는 파로(Paro)의 풍경이다. 2개의 강이 도시의 중심을 가르고 지나간다. 현재 수도인 팀부(Thimphu)에서 서쪽에 있으며 차를 타고 1시간 남짓 걸린다.


적당히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우리 사이에 찰칵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흐른다. 간간이 여기가 해발 몇 미터나 되느냐, 저 멀리에 있는 건물은 무엇이냐 같은 짧은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도 낯선 도시의 평화로움이 어색한 침묵과 긴장된 대화 사이를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은 다들 이렇겠지. 일단은 수수께끼 왕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기대해보기로 했다. 잔뜩 흐린 날이지만 미세먼지 없이 평온하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조금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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