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팀부 찬걍카사원(Changangkha Lhakhang)
먼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구름의 변덕이 심한 부탄에서는 흔한 장면이라 꺅꺅대며 동요하는 건 우리뿐인가 보다. 도마는 우리가 축제나 하늘에 열광하는 사이에도 점심 예약을 하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날이 날인지라 식당을 잡는 게 어려웠다고. 대개 밥을 먹을 때는 가이드가 가진 식당 리스트 중에서 적절한 곳을 예약한다. 그래서 도마는 항상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보통 메뉴는 취향을 맞추기 수월한 뷔페식이다. 물론 여행자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면 가능한 식당을 찾아준다. 다행히 재이와 나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라 메뉴 측면에서는 별다른 희망사항이 없었다. 아쉬운 점은 아무 데나 스윽 들어가서 먹어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갑자기 쳐들어가 보자고 제안할 만큼 식당이 흔하지도 않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어쩐지 격리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탄 사람들은 고추, 치즈, 감자, 쌀을 중심으로 하는 식사를 하기 때문에 요리가 엄청나게 다채롭지는 않다. 버섯에 치즈를 넣거나, 고추에 치즈를 넣은 반찬과 밥을 비벼 먹는 게 흔한 듯했다. 고추 때문에 음식이 매운 편이어서 치즈를 넣은 음식도 그다지 느끼하지 않았다. 인도 음식이나 고기류도 제법 많았다는 게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달까. 책에서는 육식을 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도마는 치킨을 자주 먹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마와 남걀이 같이 먹지 않는 게 이상했다. 몇 번 권해봤지만 괜찮단다. 이유를 물어본다고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묻는 자체가 실례일까 봐 추측만 하고 있다. 다른 여행자도 비슷했으니까. 가끔 함께 먹는 가이드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식당 내부에 그들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어 보였는데, 고객에 대한 이야기나 여행 정보를 교환하며 먹으려나. 사실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고객이니까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먹는 게 마음 편하고 맛있겠지. 나라도 따로 먹고 싶을 것 같다.
오후에는 팀부 시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에 가기로 했다. 50미터가 넘는 높이의 좌불상이 산자락에 놓여있어서 팀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 번쯤은 목격하게 된다. 기본적인 시설이 완공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곳으로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불상이 들어설 것이라는 예언이 반복되었다는데, 정말 운명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400개라고 했던가, 입구의 가파른 계단을 보고 잠시 식겁했다. 어딜 가든 전경은 그만한 대가를 요구했기에 감수하자고 마음을 다지고 있는데, 남걀이 차를 멈추지 않았다. 뒤쪽 방향의 산길로 향하더니 후문에 차를 세운다. ‘이참에 한 번 계단을 올라보는 건데’라는 허세 섞인 아쉬움과 편하게 왔다는 기쁨이 함께 밀려왔다.
그래도 뒤로 들어온 덕분에 보통은 볼 일이 없는 부처의 뒷모습을 먼저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불상을 뒤에서부터 천천히, 옆을 돌아서, 앞으로 다가가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얼굴을 정면으로 보게 되었을 때는 해가 불상의 뒤편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이었다. 구름과 함께 역광으로 빛을 쏘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오늘은 불교 수업이 있는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매우 경건한 분위기로 차를 내주거나 짐을 들고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는 승려들. 한편 땡중인가 싶을 정도로 핸드폰에 집중한 채 슬리퍼를 찍찍 끌며 걷는 이도 많았다. 와르르 무너진 상상 속의 풍경. 행복에 대한 환상은 없어도 승려에 대한 환상은 있었나 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수행자도 사람인데 이 시대에 걸맞은 모습이 아닌가. 그래도 뭔가 귀여운 곰돌이 그림을 보다가 다큐멘터리에서 진짜 곰을 목격한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하기도 하고.
도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음악을 틀어도 되냐고 물었다. 재이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기에 격하게 환영했다. 부처의 말씀을 담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탄의 대중음악인 릭사는 선율(Melody)이 있으면서 단조로운 연주(Sound)가 가사와 함께 반복되는 구조로, 현대적인 음악에 부처님 말씀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구조가 단순해서 웃음이 났는데, 나중에는 자꾸만 생각이 났다. 재이는 가사를 몰라도 계속해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우리 모두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남걀은 대부분 노래를 조그맣게 따라 부르며 운전했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는 더욱 기쁨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퇴근길 마음이 빙의되었다고나 할까. 그에게는 퇴근을 기다리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런 모습이 좋았다. 일을 마칠 무렵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감이 여기에 또 하나 있는 것 같아서.
남걀과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살짝 희끗한 머리카락으로 미루어 보아 살아온 나날이 짧지 않을 것 같다. 삶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건지, 원래 그런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에 대한 무조건적 호감 때문에 더 좋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문다. 어설픈 영어로 몇 마디를 더 나누었고 서로에게 조금 더 익숙해졌다. 아직은 세 걸음쯤 떨어져서 걷지만, 억지로 안면근육을 당겨가며 웃음을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편이 좋다. 소극적인 우리 모두에게는 그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