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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Aug 09. 2020

LINE 소설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Real Sound  칼럼 번역

지난달 일본의 '라인 소설' 이 출시 1년 만에 돌연 서비스를 접는다는 소식은 이제 막 이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저에겐 큰 뉴스였습니다. 라인이라는 막강한 플랫폼이 있고, 돈 내고 콘텐츠 보는 데 있어 전 세계 그 어디보다  '관대한' 유저들이 차고 넘치는 곳, 게다가 라인 그룹 내 IP/콘텐츠 사업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때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국내에서는 짤막하게 팩트만 보도되었던지라 아쉬움이 있었는데, 일본의 한 칼럼니스트 분이 궁금증을 해소할만한 좋은 글을 올려주셨기에 원작자의 동의를 얻고(!) 전문 번역으로 옮겨봅니다.


원문 : 라인 소설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신규 소설 서비스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글 : 飯田 一史 (이이다 이치시)




2019년 여름 론칭했던 소설 / 독서 플랫폼 <라인 소설> 이 2020년 8월 31일을 끝으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일본에는 <小説家になろう:소설가가 됩시다. 이하 나로우> <エブリスタ: 에브리스타> <アルファポリス: 알파폴리스> <カクヨム: 가쿠요무> 와 같은 시장 개척자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다수의 무료 사이트, 앱들이 생겼다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라인 소설>을 포함, 이슈들을 정리해 보았다.


매칭 서비스는 네트워크 효과가 절대적


웹소설 사이트 가운데 가장 잘 나간다는 <나로우> 에도  유저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창작자들은 서비스 내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다. (책으로 출판하지 않으면 작가에게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인기 장르에만 편중되었다" 등의 목소리이다.


<나로우>의 단점을 보완해 기능을 앞세운 후발 주자들이 연이어 등판했지만,  '기능' 만으로는 기존 서비스에서 작가나 독자를 데리고 오기가 쉽지 않다. 웹소설 서비스의 본질은 결국  데이트 앱이나 결혼 중개 서비스와 같은 '매칭 서비스'이다.  글을 올리는 작가와 이를 소비하는 독자를 잘 연결하여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제공자 또는 사용자를 모으지 못해 서비스 자체가 썰렁해지는 경우이다. 웹소설 서비스가 기존의 매칭 서비스와  다른 점은 작가와 독자가 1대 1 매칭이 아닌 1대 다수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독자가 없는 곳에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또한 재미있는 작품, 팔리는 작가가 없다면 이를 보러 오는 독자도 없을 것이다. 인기 작품과 독자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이야기다,


반대로 이미 다수의 작품과 독자를 확보한 서비스는 다소의 기능적 결함이 있더라도 "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도 쓴다" "인기가 있으니까 인기" 등의 이유로 웬만해서는 이탈하지 않는다.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의 힘이다.


라인이 장악한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 아무리 훌륭한 기능을 탑재한 후발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좀처럼 시장 진입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존에 안 쓰던 서비스를 쓰게 만들려면 그에 합당한 메리트, 리워드를 주지 않은 한 유저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즉, 진정한 의미의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 유저를 늘릴 수 있는가가 서비스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기능' 만으로는 절대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라인 소설은 론칭 당시 IOS 버전만 먼저 출시되고, 안드로이드 버전과 웹소설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PC 브라우저 버전 출시가 늦어지는 바람에 초기 작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크리티컬 한 이슈는 아니었다. 결국 , 라인 소설이 고전했던 이유는 '기능'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라인 소설은 인터넷 친화적인 콘텐츠라고 할 수 있었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작가와 독자를 모을 수 있는 가이다. 승부는 여기서 갈린다.


라인 소설은 아래와 같은 전략을 펼쳤다.

1. 新潮社(신쵸사) 나 KADOKAWA (카도가와) 등의 출판사로부터 라이트 노벨이나 일반 문예, 라이트 문예 작품을 수급 해 서비스한다.
2. 내부에 편집부를 두고 출판업계에서 편집자를 영입해 프로 작가들을 섭외. 신작을 라인 소설로 발행한다
3. 영상화 계약 조건으로 신인상을 신설해 작품을 수급한다

일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잘 나가는 만화 앱들도 1,2번 또는 양쪽 모두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종이 소설과 웹소설의 차이" 그리고 "만화와 소설의 차이"를 생각해본다면 과연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뒀을지 미지수이다.


라인 소설은 1번의 방식으로 수급한 종이 책을 분절해 회차 단위로 서비스하고 있다. 2의 경우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들을 '라인 문고' 나 ' 라인 문고 엣지' 라는 레이블을 통해 종이 책으로 출간하거나 회차로 나눠 분할 판매했다. 결국에는 '종이책' 이 핵심이고 앱 상의 서비스는 보조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모바일에 어울리는 소비, 유통 방식은 아니다.


대부분의 만화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팔리면서 회차 단위로 게재되는 잡지나 웹, 앱 상에서의 연재를 포괄하고 있다. 만화가들은 한 회차씩 작업하고 '다음 편에서..'로 끝내면서, 독자가 이어 보고 싶도록 만든다. 우리가 익숙한 만화 앱의 서비스 방식-- "한 회차씩 보여주고 다음 편을 보려면 일정 시간을 기다리거나, 돈을 내거나, 동영상 광고를 보게 만드는" 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종이 책을 기본으로 하는 소설은 어떨까? 여전히 소설 잡지가 있기는 하지만, 작가들은 한 회차씩 연재하고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만화만큼 의식하며  집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연재한 내용 그대로를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작가는 거의 없다. 소설가들은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는 것을 전제로 집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잡지 연재를 단행본으로 묶어서 출간하는 case 보다, 처음부터 바로 출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라인 문고나 라인 문고 엣지 작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책 내용을 분절해서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독자들이 다음 회차를 읽기 위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웹소설은 다르다. <나로우> 출신 작가인 津田彷徨 (츠다호코) 씨가 몇몇 기사에서 의견을 피력한 것처럼 (참고 : <이 세계 전생> 은 어떻게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나로우> 랭커 (랭킹 차트 상위)에 들어가려면 글자 수, 업데이트 시간, 업데이트 횟수, 회차 주요 내용, 트렌드 반영 등 디테일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매 회차 단위로 독자들이 얼마나 읽었는지 진지하게 분석한 작품이거나, 이러한 글쓰기 방식에 적응한 작가, 혹은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해도 될 만 큼 발군의 재능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작품인 경우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


모바일 독서에 최적화된 웹 소설의 세계가 이미 <나로우>등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인 소설은 오프라인 기반의 종이 책 시장을 온라인으로 옮겨오는 방식으로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소설 서비스' 로써 성장이 정체된 이유의 본질이다.


종이 소설의 새로운 레이블로써 '문고'를 선택한 것은 적절했나?


그렇다면 종이 책으로서의 라인 문고, 라인 문고 엣지는 어땠을까?  


아쉽게도 출간 초기에 히트작이 터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고, 점점 간행 부수는 줄어들고 말았다. 일본의 문고 시장은 20212년 1326억 엔 (약 1.4조 원) 규모였다가 2013년 이후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2019년에는 901억 엔 (약 9천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그중에서도 라이트노벨 문고는 하락 폭이 더 커서 2012년 284억 엔을 정점을 찍은 이후 2019년에는 143억 엔으로 반토막이 났다. 2010년대 이후 웹 소설 서적화의 주 격전지는 문고 보다 단가가 높은 단행본이다.


물론 라이트 문예는 문고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라인 문고 입장에서는 문고 형태로 출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 엣지까지 문고를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매출=고객 수 X 객단가 이므로, 소설의 독자수는 만화에 비해 절대 수치가 적기 때문에 처음부터 단가가 낮은 문고를 선택한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서 라인의 입장뿐만 아니라 책을 파는 서점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이다.


서점은 단가가 낮고 이익률이 나쁜, 회전율이 낮은 책들을 점점 기피하고 있다. 만화는 단가는 낮지만 일반 서적보다는 이익률이 좋고 회전율이 높다. 문고는 모든 부분에서 낙제이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가벼운 오락거리' 옵션에서도 점점 멀어지며 아쉽게도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사라져 가는 매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라인이 서점 측에 판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시도가 있지 않는 한, 서점 측이 적극적으로 판매를 지원할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히트작이나 인터넷 상에서 입소문이 난 작품을 모아서 출간한 형태가 아니었기에 저절로 많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출판업계 전문지를 구독하고 가끔씩 글을 올리기도 하는데 라인 문고나 엣지가 새로운 시책을 내놓거나 영업 전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나로우>나 <에브리스타>, <알파폴리스> 는 '책에서 웹으로'의 유입이 성장 요인 중 하나였다.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독자들이 사이트를 알게 되고 실제 유입까지 이어진 케이스인데, 라인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영상화, 만화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버티지 못하면 성공은 무리


하지만 라인 소설이 선택했던  '종이책 기반의 웹 소설' 이건 문고이건,  끈질기게 버텼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또 열렸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서비스뿐 아니라 종이 책에서도 새로운 레이블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영상화 작품으로 확장되어 책으로 수백 만부 팔리는 히트작이 나오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베스트셀러 책 랭킹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소설 시장에서는 영상화된 작품과 영상화된 작품으로 인지도를 높인 작가의 신작이 상위 랭킹을 점령하고 있다. TV나 영화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소설 만으로 오가닉 한 성공을 거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로 TV나 영화의 힘을 빌려 독자를 끌어오는 선순환 구조에 올라타면 그 서비스나 레이블은 망하지 않는다. 초기에 다소 불안해 보였던 레이블이 6-7년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면 아마도 한두 작품은 영상화의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웹에 연재된 소설이 책이 되거나 이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화되기 까지는 일반적으로 5,6년의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최소 3년이다. 게다가 한방에 큰 성공을 거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한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때까지 버티고 기다릴 수 있는 캐시를 확보하는 것이 결국은 이 비즈니스의 대전제이다.


또는 굳이 영상이 아닌  만화여도 좋다. <알파폴리> 의 경우 영상화된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자사 서비스에서 시작해 만화화된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IR을 통해 발표한 것처럼 아직은 만화 사업이 소설 사업보다 매출 규모가 크다. 즉, 작품당 수억 엔이 드는 영상화가 아니라 보다 작은 규모로 여러 작품을 만화화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다행히도 라인의 경우, '라인 만화'가 이미 시장에 안착해 순항하고 있다. 라인 소설의 인기 작품을 만화화하여 라인 만화에서 서비스하는 옵션도 아마 고려했을 것이다. 웹 소설에서 출발한 작품은 일반 책으로 출간하는 것보다 만화화하는 것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일본의 만화 시장은 약 4조 원대 규모이다 (출판 과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9년 4980억 엔). 소설 시장 전체 통계는 아직 없지만 연간 발행부수 등으로 역산해서 추정했을 때 약 1조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소설 시장만 놓고 본다면 대형 IT 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시장 사이즈가 너무 작다. (웹소설 시장의 신규 플레이어는 대개 중소 사업자들로 한정됨)


일본 만화 시장 규모 (전자 만화책이 종이 만화책 추월)


그러나 '소설 비즈니스'가 아닌 'IP 비즈니스'로 확대해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알파 폴리스>나 <가쿠요무>, <라인 소설>처럼 웹에서 서적으로, 만화까지 수직 계열화한 소설 사업은 '웹소설 서비스 자체로'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다. 작품 당 제작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작품들을 모두 끌어 모아서 이 가운데 만화나 영화로 만들어 리쿱할 수 있는 인기 작품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한 텍스트 마케팅 툴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숫자만 봤을 때의 판단이고,  소설 자체의 작품 가치는 논외로 함)


라인 소설이 유저를 모으기 위한 '닭과 달걀의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빨리 영상화가 가능하고 만화화 되는 작품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갖추는가에 달려있다. 영상화를 보장하는 신인 공모전도 그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이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인터넷 비즈니에서 1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소설 비즈니스 / 웹 소설 발  IP 비즈니스 시간 축으로 보자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물론 여기까지의 논의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추론에 불과할 뿐 공식 발표는 아니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배경에는 2019년에 발표된 야후 재팬과 라인의 경영 통합에 따라 각 사업 부문의 구조조정 논의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당사자들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데 까지는 아마도 꽤나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향이건, 안타까울 따름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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