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yang Eun Mar 11. 2019

고개 돌려버리지 말고

영화 <내가 사는 세상>

최창환 감독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지금까지는) 흑백으로 찍는 영화감독이다. 감독이 찍는 영화들은 그래서 항상 “노동영화”라는 호칭을 얻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노동영화”가 아닌 영화도 있나 싶다. ‘노동을 쉬고 있는 상태’는 있어도, 어떤 형태로든 노동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사실 사람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다 노동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노동영화”라고 이름 붙이는 이유를 모르지 않고, 최창환 감독이 특히 집중하는 주제나 골똘히 바라보는 대상 모두 노동자라는 사실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영화”라는 범주화를 조금은 까탈스럽게 새삼 지적하는 이유는 그런 프레임이 관객들의 마음에 벽을 세우고 아예 들여다보지 않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창환 감독은 내 오랜 친구이다. 나는 그가 훨씬 오래전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아니 희박한 기회를 발굴해가며 영화를 찍어온 것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봐왔다. 그런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내가 사는 세상(Back from the Beat)>이 극장 개봉을 하게 됐다. 대구의 시청각실이나, 지역의 독립영화 혹은 예술영화상영관이 아닌 곳에서 친구의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영화를 처음 본 건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사는 세상>이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수상하면서, 후반 작업을 하고 인디스토리라는 배급사를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고도 CGV는 수없이 많은 상영관 중 서울과 부산 딱 두 군데에 상영관을 내줬을 뿐이다.)

인디스토리가,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소개하고자 만든 전단지는 아래와 같다. (주연 배우와 감독의 사인 자랑은 덤이다.)



가뜩이나 노동에 대한 부담으로 어깨가 무겁고, 또 누군가는 하고 싶은 노동을 하지 못해 삶이 무거운데, “노동영화”를 봐야 하나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무겁고 지루한 내용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영화를 볼 생각 안 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래, 작년 5월 영화를 본 후에 왓챠에 남긴 코멘트를 동봉한다. 이 감상은 다시 본 후에도 바뀌지 않았고, 두 번 보니까 더 재미있었다. 두 번 본다고 해서 울지 않게 되지는 않았지만.


전작들에서 꾸준히 다뤄온 노동의 문제가 이번에는 청춘영화의 외피를 썼다. 감독은 청춘에 관해 얘기할 때는 설명하기보다 등장인물들을 그저 보여주는데, 노동에 관해 얘기할 때는 자세히 설명하고 시위하듯 반복해서 외친다. 이렇게 대놓고 투박하게 메시지를 전하는데도 그것이 영화의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와 절차가 현실에서는 다들 자꾸 삼키고 외면하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민규와 지홍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민규는 지홍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부탁이 있는데 해도 되겠느냐고. 두세 번 정도 물었다면 영화적인 설정에 그쳤겠지만, 그보다 더 많이 묻고 또 묻는 그 장면에서, 닥쳐 올 파경을 지연시키는 동시에 너무도 확신을 필요로 하는 민규의 결심과 용기가 읽혀서 이어지는 장면들이 더 아팠다.

(2018 전주영화제 수상을 축하합니다!!)



요즘 내가 만들고 있는 소설집 <<우리는 우리가 읽는 만큼 기억될 것이다>>의 나일선 소설가는 “어떤 작품을 정말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품 전체를 고스란히 다시 쓸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스란히 다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부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본 후에 영화를, 영화 속 민규와 시은이를, 어떤 삶을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전주로, 서울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