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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Oct 02. 2019

"넌 음식을 머리로 먹는 것 같아."

하지 말았어야 할 말 01

친구 하정이는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 연간 십억 마리 이상의 닭이 음식으로 소비되는 나라에서 닭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닭을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이유를 설명한 후에도 끊임없이 회유받는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하정이를 괴롭힌 사람 중 한 명이다. 십구 년 전 처음 만나 그 사실을 알게 되고서도 몇 년 정도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회유를 시도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치킨을 먹을 정도로 닭고기를 좋아했던 나는, 우선 이 맛있는 걸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다 같이 모였을 때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메뉴를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느꼈다.


하정이가 닭을 먹지 않는 건 어렸을 때 닭 잡는 걸 직접 본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그것 외에도 하정이는 먹지 않는 음식이 많았다. 해산물을 싫어했고 막창도 먹지 않았다. 그 모든 걸 다 맛있게 먹었던 나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하며 안타까워하거나, 한 번만 먹어보라며 권하기도 했다. 한번은 실제로 딱 한 번만 먹어보고 맛없으면 다시는 먹으라고 하지 않겠다며 막창을 구워서 준 적도 있다. 하정이는 정말로 먹었고 그 이후로 나는 다시 권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쓰고 이 글을 마저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쓰고 보니까 과거의 내가 너무 부끄럽다. 친구에게 나는 먹는 것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너무도 가능한 자신의 선택을 한 친구를 불편하게 만들고 은연중에 비난했다. 더 이상 먹어보라고 권하지는 않을 때도 이런 말은 기어이 했다. "음식은 입으로 먹는 건데 넌 음식을 머리로 먹어서 그런 것 같다"라고. 음식을 입으로만 먹은 게 뭐가 그렇게 자랑이라고.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고기와 계란과 우유를 먹지 않기로 한 지금에서야 과거의 그 말을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너무 참혹하다. 아직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기를 먹고 싶고 계란이나 우유를 먹고 싶은데 참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정말 그런 음식들이 먹고 싶지 않아졌다.


그런 음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고기를 보면 그것이 누군가의 살이라는 생각이 들고, 계란을 보면 수컷이라는 이유로 산 채로 갈려서 버려지는 병아리가 떠오르고, 우유를 보면 촉진제를 맞아가며 강제임신 하고도 정작 갓 낳은 자식과는 생이별할 수밖에 없는 젖소와 송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렇게 한번 형성된 연상 작용은 머릿속에 남아서,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이제는 내가, 머리로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음식을 음식으로만 볼 수 없고, 그들의 고통을, 죽어서 식탁에 오르기 전의 삶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정작 나는 겁이 많아서 차마 도축 장면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공장식 축산, 양계산업, 돼지 살처분 관련 영상을 보지도 못하는데, 하정이는 어렸을 때 닭 잡는 모습을 직접 봤다. 그 후로 닭고기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런 자신을 설명하고 방어해야 했다.


내 말이 가한 폭력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미안함을 느낀다고 해도 과거의 내 말을 지울 수는 없다. 부끄러움이 해소되지도 않는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고백하는 것으로 고해성사의 흉내를 내볼 뿐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정이에게 이 글을 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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