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인분도 다리에 문제가 생긴듯한데 친한벗이 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그분의 궁금증을 자극했던 것 같다.
요즘 뉴질랜드는...
뉴질랜드는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소문이 났다.
지금은 특별한 지역감염의 징후가 없어 마스크를 쓴다거나 거리두기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은 쇼핑몰이나 시내 중심가가 아니곤 365일이 거리두기보다도 더 띄엄띄엄 사람들이 다니니까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조차도 생경스럽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곳은 세계 곳곳에서 살던 뉴질랜더들이 속속 자국으로 이주를 하는 추세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편도 비행기 편이지만, 일단 와서 지정된 호텔에서 2주간의 격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격리 호텔을 먼저 예약을 해야 한단다.
덕분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지진의 여파인지, 남섬의 작은 도시여서 그런지 경제 중심지인 오클랜드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기도 하고 원래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선 집갑의 변동은 이웃집 이야기에 불과하다.
돈은 아무나 버나~
지인분은...
넉넉한 형편이어서 이곳의 집을 팔기도 전에 오클랜드에 집값이 치솟기 바로 직전에 집을 사서 싹~수리를 했단다.
이곳의 집은 원하는 가격에 팔리지 않는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집값이 오르는 통에 원하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았다고...
그게 지난주일이다.
미리 오클랜드 새로 산 집으로 이사를 간 그분은 이곳과 오클랜드를 오가고 있다가 이제 집이 팔렸으니 한동안은 올 필요가 없다고 해서 부랴부랴 나와 친한 벗 그리고 그 지인분이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부자다~'라고 여기며 살았다.
삼시세끼 먹고 사니 부자요~ 은행 빚 없이 집 한 채가 있으니 부자요~ 세 딸들이 모두 이 사회에 뿌리를 잘 내리고 살고 있으니 부자가 아니냐며...
그런데 친한 벗에게 그분의 이런저런 소식을 듣고는...
아주 잠시지만 내 마음에 작은 풍랑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 참 간사하지 않은가?
아니 뭐... 인간까지야... 나 자신의 보잘것없음과 돈 앞에서의 쭈그러진 모습을 보고 나니 이제 모든 것을 놨다고 자유한다고 했던 나 자신이 우습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의 찌질한 속내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누가 낼것이가?
이 나라에 30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아직까지도 더치페이에 익숙하지 않다.
익숙해 지기만 하면 사실 이 더치페이야 말로 누구를 만나던지 무엇을 먹던지 부담이 없는 아주 실용적인 습관임에도 아직도 내가 내는 것이 편하고 대접받는 것도 꽤 괜찮고 그렇다.
어쨌든...
그 지인분은 더치페이에 능하다.
몇 년 전인가 이 멤버 그대로 만난 적이 있는데...
성큼성큼 계산대로 간 그 지인분은 딱 자기 것만 주문하고 계산을 한 후에...
"그냥 더치페이해요~" 했다.
머쓱해진 나는 그냥 친한 벗과 내 것을 주문하곤 슬쩍 우리꺼를 계산했던 기억이 난다.
친한 벗이 동갑도 아니고 동생~ 언니~ 하는 사이인데 어찌 내 것만 계산 할 수 있으랴...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어느 정도 그분과는 더치페이가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그 때문인지 만남조차 소원해져 버렸었다.
만나기로 한 날...
주섬주섬 약속된 시간이 되어 옷을 챙겨 입다가... 독서 삼매경에 빠진 남편에게...
"오늘은 아무래도 그 언니에게 커피를 얻어먹어야겠어~ 이쪽저쪽에서 우리 집 한 채는 능히 살 만큼 돈을 벌었다쟎아~~~" 했다.
뜬금없는 소리에 남편은
"으그... 부자라는 게 뭔데? 마음이 넉넉하면 부쟎거야~ 그냥 그대가 내소... 쓸데없는데 머리 쓰지 마시고..."란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기를... "혹시 그래도 그분이 사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고... 윗사람이 산다고 하는데 그러라고 하는 게 예의일 수 있고 담에 만나면 자기가 사면되는 거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내 입으로 툭 뱉기까지 이럴까? 저럴까? 하고 각본까지 썼던 내가 우스워졌다.
드디어 셋이 만났다.
그 지인분과 주차장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차를 하고 반갑다고 허그까지 하고 들어가니 친한 벗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로 주문대로 간 지인분은 "오늘은 내가 살게~ 간단한 머핀 하고 커피?"
몇 분 전의 그 쑥스러움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겨 면적 게 웃으며..."전 카푸치노~ 초콜릿 얹어서요~" 했다.
본격적인 자랑질?
셋이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두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었다.
주제는 물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병~
지팡이까지 짚고 쩔뚝이며 걷는 나보다 10년 연상이신 지인분은...
"허리 디스크에 고관절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오클랜드 올라가면 GP한테 고관절 쪽 전문의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해야겠어~ 너무 아프고... 차에서 내릴 때 내 손으로 내 다리를 들고 내린다니까..."
나보다 3살 아래인 친한 벗은...
"밤새 너무 아파서 울다가 응급실까지 갔어요~GP한태 두 번이나 갔고 침도 맞고...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GP를 만났더니 목디스크인 것 같다고... 회사는 의사가 4주는 일을 못한다고 써 줘서 제출하고 쉬고 있기는 한데... 쉬면 낫는 병인데...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걱정 예요.."
나는...
"저도... 사지가 다 문제가 있어서... 그럼에도 삼시 세 끼를 해 먹었다는 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팔은 두 주먹을 쥐고 문을 열듯이 앞으로 밀면 어깨 위쪽 근육이 아프고 팔을 들지도 못하고 뻣지도 못하다가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요... 다리는 저두 내 다리를 내가 들어야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허벅지 뒤쪽이 뻐근하고 오래 걷는 게 힘든 정도로 좋아졌고요~"
이렇게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병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참~ 저는 지금도 발가락 밑쪽이 물방울 지나가는 것 같아서 특수한 신발과 깔창을 깔지 않으면 걷기 힘들어요~" 하니까....
친한 벗이...
"이 언니~ 죽을병은 아닌데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그런 고질병을 가지고 있다니까~" 하며 훈수를 뒀다.
대충~ 이런 이야기로 두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뻐라하는 손주 자랑도 돈 번 이야기도 뒷전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병 이야기뿐...
그렇게 대책도 없는 병 자랑을 마치고 문 닫는 카페를 뒤로하고 나오면서...
"오시면 연락 주세요~ 다음번 커피는 제가 살게요..."하고 헤어졌다.
이제 우리는...
오랜만의 만남은 서로의 병을 소개하고 자랑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누가 그러기를...
오십 줄까진 10년 단위로 몸이 바뀌더니...
육십에 들어서면 5년
팔십에 가까우면 한 해가 다르다고...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가까운 지인들이 50대에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제 50의 후반부를 달리고 있고...
예전에는 하루 푹 쉬면 낫더니... 이제는 한번 온 병은 잘 떠나려 하지 않고 나와 자꾸 동행을 하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