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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Sep 19. 2019

세계 다람쥐의 세상살이

한국 다람쥐, 미국 다람쥐, 스페인 다람쥐


"낮에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조그마한 갈색 물체가 꼬물꼬물 하는 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글쎄 거기에 아기 다람쥐가 눈도 못 뜬 채로 추위에 떨고 있더라구. 엄마 다람쥐가 집을 옮기려고 꺼내놨다가 그새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아기 다람쥐 체온이 갑자기 떨어져서 발견을 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기 다람쥐는 엄마 잃고 그렇게 혼자 남겨져 있었어."


독일에 살고 있는 아주 친한 동생이 집 뒤뜰에서 아기 다람쥐를 발견했다며, 그 이야기를 해 왔다.

혼자 남겨진 아기 다람쥐가 너무 안쓰러워 하루 동안 집에 데려와 주사기로 물도 먹여가며 보살피다가 그다음 날 바로 다람쥐(야생동물) 키우는 훈련받은 분들에게 일임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야생동물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불법이라, 길 잃은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꼭 훈련받은 조련사들한테 위탁을 해야 한다며.


어미 잃은 그 아기 다람쥐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조금 더 자라면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겠지.

인간 못지않은 복지를 누리는 그곳 다람쥐들(야생동물들) 참 복 받았다.



남산 다람쥐(chipmunks) 이야기.

서울 남산에는 '귀엽쥐'라는 이름을 가진 다람쥐가 살고 있다. 지난 8월에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다람쥐 콘테스트'에서 영예 1위를 차지한 귀요미. 

몸에 두른 선명한 줄무늬와 다른 나라 다람쥐에게서는 볼 수 없는 예쁜 띠를 머리에도 하고 있는 귀엽쥐가 1위의 영예를 안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심사위원들은 귀엽쥐의 날씬한 몸매와 예쁜 머리띠에 열광했고 전 세계 다람쥐들도 그랬다.

왕관을 머리에 쓰고 금의환향한 귀엽쥐는 세계에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류를 전파한 공을 인정받아 엄청난 인기와 극진한 대우를

한동안 받았다.


한여름 강열한 햇살에 너무 서둘러 꽃을 다 피우고 금세 고개를 숙인 채 말라버린 새빨간 제라늄처럼,

귀엽쥐의 인기도 그렇게 짧고 강하게 끝이 났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귀엽쥐는 겨울잠 준비를 해야 한다. 마치 벼락치기하듯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 일상.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밥벌이를 하고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도토리도 지금이 한철이라 지금 빠짝 모아놓지 않으면 내년 봄에 손가락 빨아야 할지도 모르니, 볼이 터지도록 꾸역꾸역 넣고 옮기기를 반복한다.

좁은 땅덩이에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치열해도 너무 치열하다.

그나마 고무적인 건 몇 년 전부터 동네 입구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었다는 사실.


'도토리 줍지 마세요! 다람쥐에게 양보하세요.'

동네 할머니들의 도토리묵 사랑을 귀엽쥐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랜 전통과 추억이 긴 음식이니 그리운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먹거리 풍부하니 이제 도토리쯤은 다람쥐들에게 양보해줬음 하는 바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내년에는 경쟁 좀 줄고, 살림 좀 나아지겠지.' 희망하며, 귀엽쥐는 오늘도 아침 일찍 굴을 나선다.


미네소타 다람쥐 (Gray Squirrels)

"저리 꺼지지 못해!!!(Get out of my bird feeder)"

새 모이통 주인 리사 아줌마의 호통에 미국 다람쥐 '그레이'가 깜짝 놀라 달아난다.

새를 그중에서도 카디날(Cardinal bird: 일명 앵그리버드)을 너무나 사랑하는 미네소타 아줌마들은 그네들 정원에 매달아 놓은 새 모이통에 매일 아침 먹이를 가득 부어준다. 새들에게 우리 정원에 와서 고운 소리로 노래 불러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런데 아줌마들 입장에선 불청객인 다람쥐가 새 모이를 호시탐탐 노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이 끝없는 싸움이 그레이 입장에서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새 모이의 그 달콤한 맛에 중독된 천덕꾸러기 그레이는 지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점점 불어나는 뱃살에 콜레스테롤 수치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간다.

전직 멀리뛰기 선수였던 그레이는 이제 살짝만 뛰어도 숨이 헐떡여지고 뒷골이 당기는 걸 느낀다.

그러니 도토리 찾으러 숲으로 가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치는 일이 되어버렸다.

' 패스트푸드의 맛'을 몰랐을 때가 행복했다고 후회도 해봤지만,  이미 빠져버린 탄수화물 중독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젠 틀려버렸어. 예전처럼 날렵하고 건강했던 몸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는 그레이.


그렇게 체념하던 그레이에게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다. '비만탈출 프로젝트'가 곧 진행될 거라는 소식이었다. 그 프로젝트라 함은, 새 모이통 주인들이 점점 발전하는 기술의 힘을 빌려, 새들은 먹을 수 있지만 다람쥐들은 먹을 수 없게끔 모이통을 최신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자발적 다이어트는 늘 실패로 끝났던 그레이에게 이 강제적 변화가 득이 될 수도 있을 테다.


만약 이 변화를 잘만 이용한다면, 그레이는 중독의 사슬을 끊고 인간의 집 정원을 박차고 나가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스페인 북부 다람쥐(Red Squirrels)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고 울창한 밤나무 숲에 바람이 불 때마다 잘 익은 밤이 우두두두 떨어졌단다. 이웃들 모두가 달려들어 그 토실토실한 밤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어도 늘 밤은 넘쳐났단다. 모두가 행복하게 그 풍요를 누렸었지... 그때는..."


손녀 다람쥐 '로하'에게 어릴 적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 다람쥐 '레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레드는 풍요로운 땅,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출신이다. 그런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있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그곳에서 난민 신세가 되어버린 레드 가족.

그 가족에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레드의 고향 갈리시아는 가장 질 좋은 하몽(Jamon: 돼지 넓적다리 부위를 소금에 절여 건조. 숙성시킨 생 햄) 생산지로 유명하다.

하몽 이베리코(Jamon Iberico) 중에서도 최고 등급인 베요타(Bellota)는 밤과 도토리를 먹으며 자연에서 방목된 돼지로부터 만들어진다.

레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돼지 수가 차고 넘치지는 않았어서 돼지 눈치 잘 살피며 적당히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하몽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돼지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돼지에게 치이고 돼지 주인들에게 쫓김을 당한 다람쥐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옆 나라로 가게 된 거다.


급기야 최근에는 가장 비싸게 팔린 하몽 다리 하나 가격이 무려 4,100 유로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세웠으니, 레드 가족 입장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좋은 소식이 있어요!" 기쁨에 찬 목소리로 로하가 레드에게 말했다.

수십 년간 사라져 거의 멸종된 줄 알았던 빨간 다람쥐들(Red Squirrels)이 최근 스페인 북부에서 발견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 법이 새롭게 지정되었다고 로하가 흥분하며 할아버지에게 전했다.


'내 눈감기 전에 고향땅을 다시 밟을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을 텐데...'

레드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그의 마지막 꿈이  이루어지길 소망했다.



구조된 아기 다람쥐. 그리고 유럽에 서식하는 빨간 다람쥐(Red Squirrel) photo by 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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