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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Oct 01. 2019

꽃보다 할배 아일랜드 버전-모두의 동지애(연대감)

산티아고 순례길 첫 번째 이야기


잔뜩 흐린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은 날이었다. 며칠 동안 비가 꽤 내렸었는지, 질퍽질퍽해진 길에서 떨어져 나온 흙이 마치 자기도 산티아고에 데려가 달라는 듯 신발에 덕지덕지 들러붙었다.

카미노의 긴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하여, 앞으로 펼쳐질 길과 경험들에 대한 기대로 원기 충만했던 우리에게 흐린 날씨와 점점 무거워지는 신발의 무게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들이쉬는 숨마다 느껴지는 북부 스페인의 이른 봄의 흙냄새에 흠뻑 취하고 길가에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새싹들의 아기자기한 자태에 한눈이 팔려서 걷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제 막 시작된 연애처럼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카미노를 시작하기엔 조금 이른 계절이라 그런지, 그 넓고 긴 길을 걷는 이는 우리 부부 둘 뿐이었다. 이 또한 너무 감격스럽고 낭만적이었다.


두 시간쯤 걸었을까?

간간이 흩뿌리던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우리의 카미노 시작을 축하해주러 하늘에서 온갖 날씨를 하객으로 내려주셨네. 뭐 이리 요란한 축하파티 까지는 필요 없는데 말입니다...'

생각하며 걷는 내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진눈깨비가 순식간에 눈으로 바뀌고 나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첫날이라 얼마만큼 걸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우리는 어느 마을에서 머물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에겐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요량으로 남편이 산 작은 카미노 가이드북 외엔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없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줄 사람도 기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눈보라에 뺨을 맞아가며 걷고 또 걸었다. 어디 눈을 잠시나마 피해 앉아 있을 쉼터는커녕 나무 한 그루도 없는 평원 지대를 우리는 무작정 걸었다.

눈이 눈물처럼 흐르고 추위에 콧물까지 범벅이 된 얼굴을 잠깐 들어 앞을 살폈다. 희미하게나마 무언가가 길 저 끝에 있는 듯했다. 눈발보다 어두운 색을 한 정지되어 있는 물체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마을이었다.

'살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Hornillos del Camino(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공공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의 지킴이 카르멘 아줌마의 간략한 숙소 이용법과 수칙을 전달받은 후 침대 자리를 배정받았다. 작은 방에 빽빽하게 놓인 허름한 이층 침대의 아래 칸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쁜 일기 탓에 순례자들이 일찍 카미노를 접은 모양이었다. 모두들 춥고 피곤한지 번데기처럼 침낭 안에 콕 들어가 있어서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어려웠다.

처음이라 어리바리했던 우리는 언 손을 녹이기엔 충분할 정도로 미지근한 물(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에 몸을 씻고 어정쩡한 자세로 이층 침대로 기어올라가 허리를 폈다.

'아이고! 이제 좀 살 거 같다!!'


한 명, 두 명, 세명, 네 명...

일층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서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이 궂은 날씨에 어디를 가시려고 하는 거지?' 생각하다 곧 짧은 잠에 빠졌다.


"우리 마을에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도 없고 식당 하나 없어요. 그러니 저녁식사는 여기 공용 주방에서 다 같이 요리해서 먹어야 해요.

요리를 책임질 사람을 정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알려주면 내가 이웃 마을에서 사다 줄게요."

카르멘의 목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남편은 자신이 식사 당번을 하겠다며 자진해서 말했고 카르멘을 따라 아래층에 있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한참이 지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도 되고, 계속 침대에 누워 있자니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아까운 마음이 들어 더 쉬고 싶어 하는 게으른 등을 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층 침대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이 다 주방에 모여 앉아있었다. 모두의 손에는 와인 잔이 들려 있었고, 그들의 볼은 불그스름하게 피어올랐으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로 채워져 있었다.

타오르는 나무 난로의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로 주방 안은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병, 두병, 세병...

비어지는 와인 병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서로에게서 오고 갔다.

남편이 요리한 간단한 알리 올리오 파스타를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나눠 먹으며, 우리 모두는 더 깊은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딘(Dean), 잔(John), 밥(Bob), 션(Sean) 그룹.

이 네 분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근교의 한 마을에서 함께 순례길을 걸으러 오셨다고 했다.

80세인 딘 할아버지, 그리고 딘의 보디가드 역을 맡은 잔은 75세, 그룹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한 밥은 72세, 그런 밥을 보필하는 막내 션이 68세.

평균 연령 75세의 이 아일랜드 할아버지들의 종교적 신념으로부터 우러나온 에너지와 흥은 밤이 깊어져도 식을 줄 몰랐다.

이야기하다가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하면 아는 사람들은 다 같이 불렀다. 순례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영국에서 온 스무 살 청년 너(Conner)는 손으로 탁자 두드려가며 장단도 맞추고.

그날 그곳 그 주방에서는 국적과 나이와 종교를 뛰어넘은 열 명의 순례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편히 누울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있음에 또 배불리 먹을 양식이 있음에 감사했다.


다음날 아침.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비슷한 시간에 다들 일어나 눈곱만 대충 떼고, 카르멘이 새벽에 들러 준비해놓고 갔을 아침을 먹은 후 길을 나섰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길의 언덕 지점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아일랜드 할아버지들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네 분이 어깨를 맞대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이 모습에 연신 훌쩍이며 걸었던 기억이...그 모습 오래도록 보고파 우리는 그들의 속도에 맞춰서 걸었다.

그날 저녁에 우리는 그날 머물렀던 마을의 한 식당에 다 같이 모여 딘과 잔의 송별회 겸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다음날 딘과 잔 할아버지는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여정이었고 밥과 션은 산티아고까지 걸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 순례길이 처음이 아니었던 이분들은 본인들의 시간과 체력에 맞춰서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걷고 가신다고 했다. 그렇게 때로는 넷이었다가 때로는 둘이 되어 그 길을 걸어가셨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딘 할아버지랑 가끔 메일을 주고받는다. 80대 중반이 되신 딘 할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하시다.

연락이 닿을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도대체 아일랜드에는 언제 놀러 올 계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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