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 클럽에서 스쿨 파티가 있던 날.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클래스메이트들이 하나 둘 흩어져 각자 흥에 취해 갔다.
다음 주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체코 친구와 함께 오크통을 테이블로 사이에 두고 나는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인상이 그리 눈에 띄지 않고 수수한 차림의 체코 친구 이름은 토마스였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시간이 자정을 향해 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소한 대화를 더 이어 나갔다.
나는 체코는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한국에 돌아가기 전 꼭 카프카의 나라 낭만의 도시 프라하에 갈 거라 했고, 체코 옆에 오스트리아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 촬영지로 두 나라를 곧 여행할 거라고 했다.
내 얘기에 흥미를 보인 그는 이란성쌍둥이 여동생과 아버지가 다른 누나가 한 명 있다고 했다. 내가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마스는 내가 자기 누나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하자 좀 더 관심이 갔달까. 좀 더 관심이 갔다고 할까. 대화라는 것이 일방에 의해 끊어질 수도 있지만 그날 우리의 대화는 그칠 줄 몰랐다.
그는 꾸미진 않았지만 소탈한 멋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눈을 바라보면 볼수록 그가 꽤나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란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특히 타인에 대한 경계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우호적인 성격, 내가 늘 부르짖었던 가슴에 사랑이 많으며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듯했다. 게다가 유머러스하고 센스까지 겸비했다.
나는 살면서 이상형을 몇 만났었는데 이상형이란 게 늘 그렇듯 모두 짝사랑으로 끝났다. 지금에야 내 눈에 좋으면 그게 바로 이상형이라는 주의로 바뀌었지만, 이십 대 철부지 한때 나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나 나올법한 나만의 이상형을 정해놓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토마스가 처음부터 눈에 확 들어왔던 건 아니었지만, 볼수록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센스있게 대화가 잘 통해서 점점 호감이 상승했다. 그리고 보니 이십 대 시절 정해놓은 이상형과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갈수록 꽤나 멋진 사람과 친구가 된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기쁜 마음도 잠시 그는 3일 후에 더블린을 떠난다고 했다.
쿵! 이 알 수 없는 마음은 뭘까. 오늘 처음 만난 친구인데 3일 후에 떠난다니 굉장히 아쉬움이 컸다. ‘아휴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니? ’ 나는 좋은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슬프다 했고, 그는 나중에 체코에 놀러 오라고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워크맨 클럽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를 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낮이었다면 집까지 걸어가도 충분할 거리였지만 자정이 넘었으므로 안전을 위해 택시를 탔다. 나는 혼자 갈 수 있다며 한사코 괜찮다고 털털함을 자랑했지만, 그는 끝까지 나에게 매너 있게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다며 택시비까지 대신 내주었다.
택시에서 내가 장난 삼아 이제 체코 친구가 생겼는데,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는 너무 슬프다고 우는 시늉을 했는데. 사뭇 진진한 표정의 토마스는 슬퍼하지 말라고, 두 달 정도 후에 다시 아일랜드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다시 여행을 올 계획이라고,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의 눈이 얼마나 확고하고 진지하게 말했던지 나의 장난이 괜스레 민망해지면서 왠지 정말 그의 말처럼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일랜드에서든 체코에서든.
그가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안녕!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