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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저녁 서쪽 하늘의 고혹스런 비너스,

체코 친구와 한국 레스토랑에 가다.

by 드작 Mulgogi

토마스가 떠나기 바로 전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저녁을 먹기 위해 트리니티 컬리지 앞에서 만나서 뭘 먹을지 고민을 하다가,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체코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체코 레스토랑에 가는 게 어떨까? 그게 아니라면 한국 레스토랑에 가서 한국 음식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더니, 그는 한국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케이! 떠나는 사람은 너니까 주인공이 원하는 대로 한국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더블린에 여러 한국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김치'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거기서 불고기를 시키고 음식 설명과 함께 젓가락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소주도 시켜서 코리안 보드카 같은 거라고 알려주고, 맛있는 음식과 반주를 곁들였다.


그는 익숙지 않은 젓가락 사용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이국 문화에 대한 흥미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점을 미루어 보아 그는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라 여겨졌다. 꾸미진 않았지만 소탈한 멋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눈을 바라보면 볼수록 그가 꽤나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국인에 대한 경계보다는 우호적인 성격으로, 내가 늘 부르짖었던 가슴에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듯했다. 그는 대화 중에 생글거리며 유의무방한 미소를 지을 때 머글머글한(달리 그 소리를 표현할 방도가 없다) 소리를 내었는데, 그의 그 이상한 웃음소리가 이상하리만치 귀여웠다.


저녁을 적당히 배부르게 먹은 후 더치페이하려고 했는데, 내가 한국 레스토랑에 가자고 아이디어를 냈으니 저녁은 자기가 쏘겠다고 한다. 이거 이거, 쓸데없이 매너는 왜 좋은 거지? 떠날거면서 그렇게 잘 해주지 마. 속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매너좋은 친구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래, 그렇다면 2차에서 맥주 한 잔 정도는 내가 살게,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자리를 일어섰다.


우리가 2차로 다시 간 곳은 워크맨 클럽, 며칠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토마스는 기네스 사에서 2nd 브랜드로 라거를 출시했는데, 홉 하우스 13이라며 한번 마셔보라고 권했다. 과일향이 은은한 라거 맥주인데 맛이 일품이다. 이후, 지금까지도 홉 하우스 13은 나의 애정 하는 맥주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도 수입이 되어 편의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는 일 년을 이곳에서 살았고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그의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날 이렇게 송별회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응준 작가님의 단편 <Lemon Tree>에 나오는 문장이 고스란히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초저녁 서쪽 하늘의 고혹스런 비너스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쉽사리 사라지고 만다.

ㅡ 이응준, Lemon Tree <내 여자 친구의 장례식>


그날은 이상하게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별이 빛나는 밤에 패리스 매치 Paris Match의 Eternity 음악을 들으며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영화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달빛은 리피 Liffey 강 위에 유유히 흐르면서도 그윽한 눈빛으로 우릴 비춰주었고 하페니 브리지 Ha'penny Bridge 근처의 바람은 산들산들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고 말할 수밖에 없기 만드는 너무 아름다워 멈추고 싶은 오월의 밤이었다.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갔다. 다음 날 나는 가이드 수습이 있어 일찍 들어가야 했고, 토마스 역시 다음날 출국해야 해서 짐을 싸기 위해 이른 시간에 헤어지기로 했다. 이번에도 혼자 갈 수 있다는 내게, 마지막이니까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택시로 데려다주었다.


헤어질 즈음 나는 그에게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짐짓 장난스레 말했다. 그가 말했다. 아쉬워하지 말라고, 우린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의 말에서 결연한 빛이 흘러 나는 더욱 그를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로 그리되리라 바라고 있다.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지 않았기에,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한국 요리를 손수 해주기로 했고 그의 이름을 한지에 한글로 써서 선물로 주기로 했다.


보고 있자면 따스하고 부드럽고 무엇보다 착한 미소, 그런 미소를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수일 만에 헤어지다니. 그는 초저녁 서쪽 하늘의 고혹스런 비너스처럼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쉽사리 사라지고 말았지만, 우리의 장소는 달라졌지만 우리의 시간은 함께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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